#1. 지난해 여름 개봉해 934만1,747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본 '설국열차'(감독 봉준호)는 체코 프라하에서 대부분 촬영됐다. 세계적 관광명소의 수려한 풍광을 담을 의도가 전혀 없었던 이 영화가 프라하를 촬영지로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100m 길이의 열차 세트를 프라하 외곽 바란도프 스튜디오에서만 설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촬영 전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국내 스튜디오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당한 크기의 세트라 어쩔 수 없이 해외 대형 세트장들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2. 배우 배두나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클라우드 아틀라스'(감독 앤디ㆍ라나 워쇼스키, 톰 티크베어)는 미국 아닌 독일 베를린에서 만들어졌다. 19세기 태평양을 시작으로 20세기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21세기 영국 런던을 거쳐 22세기 서울을 묘사하는 이 영화의 80% 가량은 베를린 외곽 바벨스베르크 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특수촬영에 적합한 대형 스튜디오 시설과 숙련된 영화 인력, 제작비 환급 혜택 등이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베를린으로 불러들였다. 2만5,000㎡의 촬영시설과 50만 벌의 의상 등을 갖춘 바벨스베르크 스튜디오는 유럽에서 영화 촬영의 메카가 됐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이 30일부터 15일 동안 서울 등지에서 촬영하기로 하면서 해외 영상물 촬영유치(로케이션 산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어벤져스2'의 촬영 유치는 국내 로케이션 산업에 분수령이 될 수 있지만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단순한 야외 촬영유치는 교통 통제 등으로 시민 불편을 가중시켜 별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어벤져스2'의 국내 촬영이 한국관광공사나 영화진흥위원회, 서울영상위원회 등 공공기관의 일회성 업적에 그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대형 스튜디오 건설 등 인프라 구축을 우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영상물 촬영 유치를 위한 아시아 국가들의 공격적 행보를 눈 여겨 볼 만하다. 말레이시아는 영국 파인우드 그룹과 손잡고 1,473억원을 들여 남부 조호르 지방에 파인우드 이스칸다 말레이시아 스튜디오를 짓고 있다. 2011년 시작된 공사는 올 여름 1만1,519㎡규모의 스튜디오 시설이 완공된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80만 달러 이상 자국에서 돈을 쓰는 영화에 대해 사용비의 30%를 돌려 주는 정책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베트남도 2,200억원을 투입해 하노이 외곽 콜로아 스튜디오에 1만2,000㎡의 촬영시설을 새로 지을 계획이다. 두 나라의 대형 스튜디오 건설 경쟁에는 동남아, 나아가 아시아의 영상 허브가 되겠다는 야심이 담겨 있다.
중국도 경쟁에 뛰어 들었다. 항조우 외곽에 위치한 헝디안 스튜디오는 중국 로케이션 산업의 잠재력을 품고 있다. 촬영 관련 건물의 규모만 49만5,995㎡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과 충무로 영화 '중천' 등 대형 사극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오석근 부산영상위원회 위원장은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영화 촬영 유치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며 "인프라 경쟁력이 약한 우리는 세계적 수준의 스튜디오 건설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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