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역사상 처음으로 19일 이주열 총재 후보자에 대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인사 청문회가 열렸다. 여느 청문회처럼 '신상 털이'는 없었고, 한국은행 총재로서 정책 능력을 검증하는 자리였다. 상당히 의미 있는 청문회였다는 평이 쏟아진다. 야당인 김현미(민주당) 의원이 "오늘 인사 청문회가 정책 청문회가 된 것은 후보자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평가"라고 극찬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청문회 내용은 밋밋했다. 이 총재 후보자의 답변은 지나칠 정도로 신중했고, 또 조심스러웠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 총재 후보자만의 색깔을 별로 찾을 수 없었다"는 평을 내놓았다.
이 총재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거듭 강조한 것은 시장과의 소통 확대, 그리고 중앙은행의 신뢰도 회복이었다. 김중수 현 총재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적돼 온 부분을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 후보자는 "지난해 4월 금리인하 예상이 많았는데 시장에서 인하 기대가 형성됐다는 것은 중앙은행이 시그널을 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기대와 어긋났다고 시장에서 평가를 하는 것을 보면 소통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은은 작년 4월 시장 기대와 달리 금리를 동결한 뒤 다음 달인 5월에야 금리를 내려 논란을 부른 바 있다.
이 후보자는 또 최근 통화정책의 시장 영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약속대로 정책을 이행하는 것 같지 않다고 시장에서 평가한 결과가 아니겠느냐"며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답했다. 그는 특히 "중앙은행 통화정책 성패의 관건은 신뢰"라며 "중앙은행과 시장 사이의 경제 현상을 보는 시각, 미래 흐름을 보는 시야의 차이를 줄여나가며 중앙은행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주요 현안에 대한 정책은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비판을 받아온 물가안정목표제에 대해서는 "지금 저물가는 공급적인 측면이 강하고, 물가안정목표는 중기적인 목표인 만큼 바꿀 생각이 없다"고 현 한은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했다. 외환보유액의 한국투자공사(KIC) 위탁 운용액 확대에 대해선 "국부펀드 육성 못지않게 위기 시 대비 필요성이 강한 만큼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또 미국처럼 금리정책에서 선제적 안내(포워드 가이던스)를 도입하는 것에서도 "생각해볼 여지는 있지만 선진국처럼 하기엔 여건이 안 됐다"고 말했다. 한은이 주택금융공사에 추가 출자하는 것에 대해선 "중앙은행이 재정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논란이 많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향후 정부와 갈등 가능성을 남겼다.
이 총재 후보자는 가계 부채 문제에 대해서는 "금융 리스크 차원에서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면서도 "가계부채는 금리보다는 고용, 즉 일자리 증대로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가계부채 때문에 금리를 손 대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정부와 정책 협조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다. 청와대에서 열리는 서별관회의는 "사안별로 선별해서 참석하겠다"고 답했고, 대신 "금융안정을 위한 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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