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중장거리 전ㆍ현직 챔피언 케네니사 베켈레(32ㆍ에티오피아)와 모 파라(31ㆍ영국)가 세기의 풀코스 마라톤 데뷔전을 치른다. 무대는 제38회 파리마라톤(이하 한국시간 4월6일) 대회와 34회 런던마라톤(4월13일)이다. 이들은 당초 같은 대회에 출전해, 자웅을 겨루려 했으나 패배에 대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의식한 듯 데뷔전을 따로 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5,000m와 1만m 육상 트랙을 수년간 주름잡았던 베켈레와 파라가 마라톤에서도 새로운 신화창조에 나설지 세계 육상인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두 종목 모두 세계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베켈레는 설명이 따로 필요 없는 ‘중ㆍ장거리의 황제’다. 이 부분에서 베켈레는 적어도 농구의 마이클 조던, 테니스의 로저 페더러와 동급으로 평가 받고 있다. 2001~09년까지 얼핏 잡아도 26개 국제대회에 출전해 은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제외하고 결승선을 전부 금빛으로 도배했다. 이중 올림픽 금메달만 3개다. 5,000m(12분37초35)와 1만m(26분17초53) 세계 최고기록 경신은 ‘금빛 여정’에서 얻은 보너스인 셈이다. 하지만 베켈레는 이후 종아리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져, 한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땐 5,000m는 포기하고, 1만m에 출전했으나 중도 기권해야 했다. 이듬해 런던올림픽 1만m 4위로 밀려나는 등 노쇠기미를 보였다. 베켈레가 휘청거리는 사이 황제의 자리를 빼앗은 이가 파라다. 소말리아 이민자 출신 파라는 런던올림픽에서 두 종목 모두 1위로 통과해 일약 영국의 국민영웅으로 부상했다. 그는 2013년 모스크바 세계육상선수권 때도 역시 두 종목을 석권해 베켈레와 나란히 올림픽ㆍ세계선수권 ‘더블 챔피언’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육상 트랙에서 이룰 수 있는 영광을 모두 이룬 이들은 필연적으로 마라톤으로 눈길을 돌렸다. 실제 지난해 9월 영국 뉴캐슬에서 열린 제33회 그레이트 노스런 하프마라톤에서 맞대결을 펼친 바 있다. 당시 비바람을 동반한 강풍이 부는 악조건 속에 베켈레가 1시간9초에 레이스를 마쳐, 파라를 1초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베켈레는 자신의 첫 풀코스 레이스를 위해 매주 3시간 거리주(일정한 거리를 달리는데 걸리는 시간)를 소화하며 몸을 만들고 있다. 그는 “마라톤 도전은 우승을 하기 위한 것”이라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하지만 베켈레는 “2시간3분, 5분 혹은 6분대라고 특정 지을 수는 없다. 다만 완주를 위해 최선의 준비를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베켈레와 그의 매니저 조스 허멘스는 그러나 파리마라톤 대회 신기록(2시간5분12초) 경신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파리마라톤 코스는 현재 마라톤 세계 최고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윌슨 킵상 키프로티치(32ㆍ케냐)의 마라톤 데뷔전 무대이기도 하다. 킵상은 2010년 이 대회에서 2시간7분13초로 3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킵상은 그러나 3년 후 2013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3분23초 세계기록을 갈아치웠다.
한편 역대 마라톤 데뷔전 최고기록은 데니스 키메토(30ㆍ케냐)가 2012년 베를린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4분16초다. 허멘스는 “파리마라톤은 베켈레의 남은 선수 이력에 분수령이 될 것”라며 “성공적으로 데뷔한다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목표로 할 것이다”고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에 말했다.
케냐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파라 역시 생애 최고의 데뷔전을 꿈꾸고 있다. 런던마라톤 조직위는 파라의 레이스 파트너로 킵상과 런던올림픽, 모스크바 세계선수권 우승자 스테판 키프로티치(25ㆍ우간다), 디펜딩 챔피언 체가예 케베데(27ㆍ에티오피아)를 초청했다. 파라는 지난 17일 뉴욕시 하프마라톤에 출전해, 1시간1분7초로 가장 먼저 골인한 제프리 무타이(33ㆍ케냐)에 18초 뒤진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골인 직후 정신을 잃고 쓰러져, 휠체어를 타고 무대를 빠져나가 많은 우려를 자아냈다. 파라는 레이스 도중에도 다른 주자들의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영하의 추운 날씨가 ‘낙마’ 원인으로 밝혀져 한 시름 덜었다. 파라는 기자회견에서“느낌이 좋다”라며 문제될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곧장 케냐로 날아가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비공인 세계최고기록(2시간3분2초)을 보유한 무타이와 파라는 런던마라톤에서 다시 만난다. 베켈레와 파라에 앞서 중장거리와 마라톤을 동시 제패한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41ㆍ에티오피아)는 페이스메이커로 런던마라톤 출전명단에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끌고 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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