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는 더 이상 새로운 정책의제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만 봐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가 한결 같이 "기업활동을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권 초 강력한 추진력 속에 줄어드는가 싶던 규제는 결국 정권 말이 되면 그 수가 더 늘어나는 전형적인 '용두사미'로 끝나게 됐다.
피규제대상인 기업들은 역대 정부 중에 그나마 김대중 정부 시절의 규제완화가 가장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국제통화기금(IMF)의 강력한 압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김대중 정부는 1998년 출범과 동시에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했고 이를 통해 규제의 절대량 자체를 줄여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첫해인 1998년 1만372개에 달했던 규제건수는 1999년 7,294개, 2000년에는 6,912개까지 감소했다. 물론 집권말기가 되면서 다시 늘어나기 시작해, 2001년과 2002년에는 각각 7,248개와 7,546개로 증가했지만, 결과적으로 집권 5년간 규제는 연 평균 6.5% 줄어드는 등 효과를 냈다는 분석이다. 물론 금융규제 완화로 카드대란이 양산되고 버블이 생성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규제 총량제'를 들고 나와 첫해인 2003년 7,827개였던 규제수가 이듬해 7,707개로 줄어드는 '반짝' 효과를 봤다. 특히 이 시기에는 골프장 규제를 비롯해 모든 행정절차를 규제개혁위원회에 일임하는 등 규제완화를 위해 힘을 쏟았다. 하지만 집권 3년 차부터 규제총량제가 유야무야 되며 오히려 규제가 증가하기 시작했고, 결국 집권 말기인 2006년 규제건수는 8,084개로 연평균 1.8% 늘어났다.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과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에 등록된 규제건수를 보면 각각 5,186건과 5,186건으로 크게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규제철폐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규제분류 방식을 바꾸면서 나타난 착시현상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부터 '규제전봇대를 뽑겠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법인세 인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제2 롯데월드 설립허가 등 집권 초부터 굵직한 대형규제들을 없애나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오히려 가장 많은 수의 규제를 늘린 정권이기도 했다. 집권 2년 차인 2009년 1만1,050개였던 규제건수는 ▦2010년 1만2,120개 ▦2011년 1만3,147개 ▦2012년 1만3,914개 등으로 연 평균 8% 급증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역대 정권의 규제개혁 실패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신규규제 도입 시 증가하는 사회적 비용을 측정해 동일한 비용을 발생시키는 기존 규제를 폐지하는 '규제비용 총량 관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에 따르면 2010년 이 제도를 도입한 영국은 이듬해 상반기에만 32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는 등 성공적인 규제개혁을 진행 중이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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