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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하디드와 오세훈… '판타지형' 닮은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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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하디드와 오세훈… '판타지형' 닮은 꼴

입력
2014.03.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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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의 설계자 자하 하디드의 11일 기자 간담회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 같았다. 한 기자가 "비용과 규모가 지나치게 크지 않느냐"고 질문하자 하디드는 "무슨 기준으로 크다고 하는 거냐"고 반박하다가 급기야 "외국인이 건축을 맡은 것에 대해 논란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며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질문이 이어지면서 기자들 사이에서는 "왜 오세훈한테 할 질문을 건축가한테 하냐"는 낮은 수군거림이 나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퇴진 이후 'DDP 논란'이라는 화살은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해왔다. 정작 비난을 받아야 할, 2007년 국제 공모 당시 하디드의 설계안을 뽑았던 심사위원들(외국인 2명, 한국인 3명)은 어딘가에 박혀 쥐 죽은 듯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던 중 한국에 온 건축가에게 그 화살이 고스란히 쏟아지는 격이니 하디드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할 일이다.

그에게 따로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동대문운동장의 유구한 역사를 돌려내라고 닦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건축가의 몫으로 남겨진 질문이 전혀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었다. 전세계에 쌍둥이 같은, 그것도 매번 지역적 맥락을 무시하는 랜드마크를 짓는 건축가에게는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그가 예술가이기에 앞서 지역 주민의 삶이 담기는 건물을 짓는 건축가라면, 아니 건축가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세계화의 부작용과 근대 건축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건물을 계속 지을 수 있을까.

14일 인터뷰를 앞둔 심정은 우려 반, 기대 반이었다. 자신의 조형세계에 푹 빠진 건축가의 자화자찬을 반복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동대문운동장의 활용 방안에 대한 건설적인 의견을 듣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인터뷰 중 드러난 하디드의 생각은 정말 뜻밖이었다.

"서울은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DDP 같은 현대식 건물이 동대문의 새로운 지역 정체성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겁니다."

서울의 정체성이 모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적 맥락에서 벗어난 우주선 같은 건물이 그 정체성을 구축할 것이란 말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시 정체성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란 얘기냐"란 질문에 그는 "옛날 건물을 다시 지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가 말한 옛날 건물은 고궁이었다. DDP를 둘러싼 건물들과 그곳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서울의 삶이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얘기를 꺼내려고 하자 하디드는 극도로 불쾌감을 표시하며 예정된 인터뷰 시간을 절반도 채우지 않은 채 "그만하겠다"고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대한 비판 중 핵심은 그의 유치한 문화적 취향이다. DDP를 비롯해 오페라하우스, 세빛둥둥섬은 구질구질한 것은 싹 밀어버리고 반짝거리는 새 것으로 채우려고 했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혹자는 "딱 봐도 누구의 치적인지 기억할 수 밖에 없는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자하 하디드는 동아시아 정치인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고 평했다. 나는 여기에 형태뿐 아니라 가치관까지 정확히 일치한다고 보태고 싶다.

인터뷰 후 하디드 측은 DDP 관계자들을 통해 "너무 예민했던 것 같다"며 사과의 뜻을 전해왔다. 나는 "당신이 미안하다고 생각한다면 이 질문에 답해달라"며 미처 하지 못한 질문을 메일로 보냈다. "건축은 삶을 담는 그릇이다. 당신이 조각가가 아니라 건축가라면 서울 사람들이 DDP를 어떻게 활용할지 기대하면서 설계했을 것이다. 구체적인 안을 듣고 싶다."

무려 3쪽이나 되는 답이 돌아왔는데 서울이 세계적인 디자인 도시가 되는 데 DDP가 일조할 것이라는 내용을 장황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유명 건축가의 건물이라면 도시의 격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천박한 건축주, 그리고 자신의 판타지를 이루는 것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건축가. DDP는 이 둘의 조합이 만들어낸 서울의 기묘한 자화상이다.

황수현 문화부 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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