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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세기의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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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세기의 나들이'

입력
2014.03.18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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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데 모든 것을 바친 수집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이 1938년 보화각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한국 최초의 사립박물관이다. 국보와 보물 등 명품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일반인이 볼 기회는 매년 2차례, 봄과 가을에 2주씩 하는 전시가 전부였다. 그때마다 몰려드는 관객들로 낡은 건물의 비좁은 전시장이 미어터지고 건물 밖으로 수백 미터씩 긴 줄이 생기곤 했다.

21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내 디자인박물관에서 개막하는 '간송문화(澗松文華)-문화로 나라를 지키다'전은 간송미술관이 외부에서 처음 하는 전시여서 진작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국가 차원의 우리 문화재 해외 전시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 아주 가끔 소장품을 빌려준 적은 있어도 직접 기획해서 외부 전시를 하기는 처음이다. 간송이 수집한 명품 중의 명품으로 관객을 맞는다. 1부 '간송 전형필'(3월 21일~6월 15일), 2부 '보화각'(7월 2일~9월 28일)으로 이어진다.

1부는 간송이 문화재 수집에 쏟은 열정을 보여주는 일화 중심으로 해당 유물을 모았다. 거간이 부른 금액의 열 배를 주고 구입한 고서 '훈민정음'(국보 70호), 일본인으로부터 천신만고 끝에 사들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국보 68호), 일본까지 가서 오사카의 골동상에서 되찾아온 신윤복의 '혜원전신첩'(국보 135호) 등 한 점 한 점에 깃든 사연이 각별하다. 그에게 문화재 수집은 장안 최고의 부잣집 아들로서 취미 삼아 한 일이 아니라 문화적 독립운동이었다. 문화재를 지켜야 민족혼을 지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가산을 거의 탕진해가며 모았다.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고 이미 빠져나간 것은 되찾아 왔다.

간송은 직접 그림 그리고 글씨 쓰고 전각을 하는 등 조선시대 문인의 풍모를 지녔던 사람이기도 하다. 전시장 첫 머리에 놓인 유품과 유작들은 간송의 그런 아취가 예술가 못지않았음을 보여준다.

간송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1부 전시와 달리 7월에 시작하는 2부 전시는 간송의 수집품을 조각, 회화 등 장르별로 엄선해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8월 출범한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설립 기념 행사이기도 하다. 시대 변화에 맞춰 좀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운영을 하고자 비영리 법인으로 다시 출발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운영하는 서울시디자인재단과 업무 협약을 맺어 앞으로 3년 간 이곳에서 전시를 하기로 했다. 대중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올해 1월 인터넷 포털 네이버에 소장품을 소개하는 온라인 전시도 시작했다. 외부 전시 한 번 안 했고 아직까지 그 흔한 홈페이지도 없는 곳임을 생각하면 큰 변화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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