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는 이제 밍크코트를 살 수 있을 겁니다. 밍크코트를 언제나 반대하던 내가 죽었으니까요."
한 한국전 참전용사가 죽기 전 직접 쓴 부고가 해외 페이스북, 트위터 사용자들을 감동시켰다. 익살스런 문장에 담긴 가족과 일, 삶에 대한 애정이 누리꾼을 사로잡은 것이다.
부고를 쓴 사람은 미 해병대 소속으로 1951년부터 3년간 한국전에 참전한 월터 조지 브륄 2세. 그는 지난 9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영면했다. 향년 81세.
그의 부고는 고인이 떠난 다음날 손자가 발견해 페이스북에 올렸고, 그 감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18일까지 이어지고 있다. 브륄을 따라 자신의 부고를 미리 쓰는 사람도 등장했다.
"월터 조지 브륄 2세는 죽은 사람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부고는 브륄 자신의 인생사를 익살스럽게 풀어냈다. 고인에게는 조금씩 건강이 나빠지는 것도 농담거리였다. 브륄은 "1935년 편도선이 브륄보다 먼저 죽었고 1974년에는 척추 디스크가, 1988년에는 갑상선, 2000년에는 전립선이 떠났다"고 썼다.
고인이 부고에서 가장 많이 다룬 것은 가족이었다. 브륄은 자녀와 손자 손녀 이름을 하나씩 쓰며 사랑을 전했다. 57년 동안 함께 한 아내에게는 "오직 밍크만이 밍크(가죽)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믿은 자신이 죽은 만큼 "이제 밍크 코트를 살 수 있게 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일과 사회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브륄은 자신이 미국의 듀폰사에서 30여년을 근무했다면서 "자신을 아는 사람 중 극히 일부만이 듀폰에서 근무한 사실을 알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자신은 언제나 그저 자리를 채우려고 고용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며 농담을 던졌다. 1993년 직장을 잃었을 때를 회상하면서도 "근사한 저녁식사와 상품권을 받고는 '다운사이즈(해고)'됐다가 다음해 계약직으로 복직해 '다운사이즈'되기 전과 같은 일을 했다"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부고 끝 부분에서 "누구든 브륄을 기억하는 사람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를 기념하길 바란다"면서 "장례식에 꽃을 가져오기보다는 브륄의 이름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친절한 행위를 하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그의 손자는 페이스북에 부고를 올리면서 "인생에 이런 식으로 해학을 더할 줄 알았던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이라며 할아버지를 추모했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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