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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3월 19일] 법관 공직 진출의 문제

입력
2014.03.1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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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장에 현직 고위 법관이 내정되었다. 이전에도 현직 법원장과 대법관이 감사원장에 임명된 사례가 있었으니 더 이상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관행이 사법의 독립성 확보와 신뢰 회복에 역행한다는 점이다. 퇴임 후 전관예우라는 고질적인 병폐가 점점 해소되어 가는 상황에서, 새로운 문제가 하나 추가된 것 같은 느낌이다.

판결에서 법관의 주관적 판단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 정도다. 먼저, 판결의 설득력이다. 판결이 치밀한 논증을 통해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시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형식적인 측면인데, 사법절차의 공정성과 사법부의 독립성이 그 핵심이다. 판결이 외부의 영향 없이 독립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외양을 통해 시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재판의 독립성에 의구심이 든다면, 제 아무리 설득력 높은 판결도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당사자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법관을 재판에서 배제하는 이유는, 그 법관이 '실제로' 공정한 재판을 할 가능성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그런 '형식'에서 나온 재판결과를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관의 행정부 요직 진출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법관이 개인적으로 또는 일반적으로 그 자리에 적합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굳이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방통위원장이라면 방송에 대한 전문성, 정치적 수완이나 조정능력 등이 중요한 요소이긴 하겠지만, 그동안 방송통신위원회가 정치적 풍파에 시달려왔던 점을 생각하면 무색무취한 법관 출신이 더 적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여기서 자질론은 잠시 접어둬도 좋다. 설사 법관이 그 자리에 적합한 완벽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비판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법관이 행정부 요직에 임명되는 것이 관행으로 정착되면, 법관들은 자연스럽게 행정부 고위직 인사 때마다 잠재적 후보군이 된다. 당장 내일 판결문을 써야 하는 법관이 행정부 인사에도 촉수를 세우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법원의 피라미드식 위계구조로 인해 법관들이 상급법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문제가 계속 지적되어온 마당에 대통령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면 암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리에 연연하는 법관이 없을 거라고 가정해도 마찬가지다. 법관들이 스스로 고결한 독립성을 지킨다고 해도, '외관상'의 흠결이 있는 재판이 신뢰받기는 어렵다. 재판에서 패소한 당사자가 나중에 그 담당법관이나 소속법원 법원장이 행정부 요직으로 발탁되는 모습을 보면서, '짜고 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패소한 당사자가 '정치판사 물러가라'며 판사의 자택 앞에서 시위하는 일도 종종 벌어지는 상황에서, 법관이 수시로 행정부 요직에 진출한다면, '정치판결'이라는 근거없는 추단에 확신을 심어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최근 사법부는 법조일원화, 법원장 임기제, 평생법관제 등 사법부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사법개혁을 추진해 왔다. 이번에 방송통신위원장에 내정된 법관은 이런 조치에 따라 법원장직을 마치고 재판업무에 복귀하여 평생법관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 전관예우라는 골칫거리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길이 드디어 열렸는데, 스스로 그 길에 발걸음을 내딛은 지 불과 한 달 만에 행정부의 새로운 자리로 떠난다니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법관 출신이 행정부 요직으로 옮겨가는 것이 '절대' 안된다고까지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이 그동안의 사법개혁에 찬물을 끼얹는 손해까지 감수하면서 현직 법관을 차출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다. 과문한 탓에, 대한민국에 방통위원장이나 감사원장을 시킬 만한 인재가 얼마나 부족한 상황인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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