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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돌려지는 핏빛 스크린… 끔찍한 사회현실의 거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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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돌려지는 핏빛 스크린… 끔찍한 사회현실의 거울일까?

입력
2014.03.1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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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본 '헬리'는 가슴에 큰 돌덩이를 얹는 멕시코 영화다. 마약과 연루된 여동생 때문에 가족이 풍비박산된 한 남자의 수난을 다룬다. 너무하다 싶은 고약한 장면들이 종종 마음을 덮친다. 범죄조직원들이 게임을 하듯 피해자들의 성기 등을 고문하는 장면에선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 칸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됐을 때 격한 논란을 일으킨 이 영화는 이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안았다.

최근 서구의 환호를 이끌어낸 멕시코 영화들은 '세다'는 표현만으로 형용하기 어렵다. 2011년 만난 멕시코 영화 '애프터 루시아'도 눈과 마음을 할퀸다. 주인공 여고생이 인분이 섞인 케이크를 억지로 먹거나 윤간 당한 채 방치되는 장면 등에서 스크린을 응시하기 쉽지 않다. 2012년 만난 '어둠 뒤에 빛이 있으라'도 만만치 않다. 악마가 등장하고 집단 성교를 아무렇지 않은 듯 묘사하는 괴작이다. 도덕적 죄책감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자신의 머리를 뽑아 생을 마감하는 모습으로 끝맺는다. '애프터 루시아'는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대상을, '어둠 뒤에 빛이 있으라'는 감독상을 각각 받았다.

두 눈 뜨고 보기 힘겨운 멕시코 영화들이 서구에서 각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글 같은 신자유주의 체제에 내던져진 멕시코 사회의 참담한 현실을, 무지렁이 같은 사람들의 삶을 렌즈 삼아 날 것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이라는 평들이 따른다.

눈과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론 한국 영화도 뒤지지 않는다. 일부 영화는 오히려 멕시코 영화들의 잔혹 묘사를 앞지른다. 지난해 개봉한 '더 파이브'의 연쇄 살인마는 희생자들의 몸을 재료 삼아 설치작품과 인형을 만든다. 범인이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듯 진열대에 전시한 희생자들의 변형된 모습에서 피 비린내가 훅 풍긴다.

13일 개봉한 '몬스터'는 '더 파이브'에서 한 발 더 나간다. 젓가락으로 사람을 간단히 살해하는 장면(범인의 간결한 동작과 깔끔한 마무리가 마치 세련된 액션을 보여주듯 표현된다)은 그나마 약과다. 살인을 유희로 여기면서 즐기는 주인공 태수는 희생자들을 화장한 뒤 나온 뼛가루를 섞어 일종의 '인간 본차이나'라 할 수 있는 괴기스런 도자기를 만든다(그 또한 진열대에 이들 도자기를 이름표와 함께 전시한다). '더 파이브'보다 더 끔찍한 설정이다. 태수는 족발을 휘둘러 자신의 양어머니 등을 잔인하게 죽이기도 한다. 관객의 고개를 흔들게 만들 이 장면은 '황해'(2012)의 소름 끼치던 뼈다귀 액션보다 '진일보'했다.

언제부턴가 충무로 스릴러는 잔혹 묘사에 골몰하고 있다. 누가 더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지 경쟁하는 모양새다. 피도 눈물도 없는 한국 사회 현실이 더 잔혹하다고, 멕시코 영화들처럼 한국 영화들도 그저 시대의 거울 역할을 하는 거라고 누군가는 주장할지 모른다.

'몬스터'엔 돈이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수 있다 생각하며 살인극을 뒤에서 조종하는 자본가가 등장한다. 배금주의가 어떻게 우리 사회의 지옥도를 그려가고 있는지 보여주는 인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도 신자유주의가 빚어낸 양극화 사회의 참극을 상업영화인 '몬스터'가 반영한 것이라고 표현하려니 머쓱해진다. 최근 충무로의 강박적인 잔혹 묘사에 흔쾌히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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