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연루된 국가정보원 직원과 협력자 등에게 검찰이 형법 적용을 고집하고 있는 가운데, 법원에서는 국가보안법상 날조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시각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서울지역의 한 판사는 "주변 판사들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10명 중 7~8명은 국보법상 날조죄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더라"고 전했다. 국정원 직원이 '미필적 고의(未必的故意)'로라도 협력자에게 문서의 작출(위조 등)을 유도해서 이 문서를 사용했다면 공범으로 국보법 날조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데 대다수 판사들의 생각이 일치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권위자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저서 에서 밝힌 조문 해설(한국일보 3월 17일자 기사)과 같은 맥락이다.
반면 그동안 국보법을 지나치게 넓게 적용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검찰이 이번 사안에서만큼은 국보법 적용을 피하려는 모습이다. 검찰은 피고인 유우성(34)씨의 출입경기록 관련 문서를 위조한 국정원 협력자 김모(61ㆍ구속)씨에게 형법상 위조사문서 행사와 모해증거인멸죄(재판 중인 피고인에게 해를 가하기 위해 증거조작 등을 하는 것)를 적용했고, 김씨에게 문서를 구해 오라고 요구한 국정원 대공수사국 김모 조정관에 대해 이날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도 같은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증거위조 특별수사팀은 구속영장 혐의조차 감출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수사팀 소속이 아닌 검찰 관계자는 "유씨가 실제 북한과 중국을 오간 날짜들이 확정돼야 국정원 직원이나 협력자가 (중국이 위조됐다고 통보한 문서들을) 위조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미필적 인식이라도 있었는지 확정될 수 있다는 것 아니냐"며 "이는 수사를 해서 결론적으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협조자 김씨가 문서 중 하나를 위조했다고 시인한 상황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또 위조를 확정할 수 없다면 형법상 모해증거인멸죄는 어떻게 적용했는지 등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한 판사는 "국보법 날조죄는 전례가 거의 없어 해석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검찰이 명확한 모해증거인멸죄를 적용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번 사건에서는 검찰과 법원의 입장이 뒤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대공사건에선 검찰이 국보법을 넓게 해석하는 반면 법원이 폐해를 의식해 상대적으로 좁게 해석해 왔는데 이번 사안은 반대라는 것이다.
국보법의 남용을 피해야 한다는 대전제는 옳다고 해도, 검찰이 권력기관인 국정원과 자신들이 연루된 사안에만 이런 기준을 내세운 것을 두고는 비판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보다 더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권력기관에만 관대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형법 적용을 강행할 경우 달리 막을 방법은 없다. 법원관계자는 "결국 비판을 받아 온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 문제"라고 말했다. 검찰이 형법보다 앞서는 특별법(국보법) 대신 형법을 적용해 기소한다고 해도 법관은 기소한 법에 따라 판결을 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검찰에 국보법을 적용해 공소장 변경 신청을 하도록 요구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법관은 "피고인의 권익을 우선으로 하는 '피해의 최소성' 원칙이 있기 때문에 법원이 형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특별법 적용을 제안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검찰이 아예 기소를 하지 않는다면 법원이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재정신청이 가능하지만, 일단 기소한 후에는 법 적용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재정신청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검찰이 비판을 무릅쓰고 형법을 적용해 기소할 경우 이를 제어할 방법이 없는 상태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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