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열린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 눈길을 끈 물건이 있다. 바로 즉석 카메라다. 남측에서 올라간 가족 중 상당수가 즉석 카메라로 서로 사진을 찍어 나눠 갖느라 바빴다. 이날 화제가 된 즉석 카메라는 한국후지필름이 내놓은 '인스탁스'였다. TV로 이를 지켜 본 한국후지필름의 이정희 대리는 "가족들이 행사장 곳곳에서 '인스탁스'로 다정하게 사진을 찍고 서로 나눠 가지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먹먹했다"며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또 열리면 인스탁스를 제공하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고 전했다.
인스탁스는 전 세계 단 하나뿐인 즉석 카메라다. 1995년 첫 생산을 한 이래 디지털카메라와 스마트폰의 폭풍우를 견디고 살아 남았다. 인스탁스는 스마트폰의 평균 성장률(약 30%)을 뛰어넘는 성장률(약 33%)을 기록하며 연간 200만 대 이상 팔리는 '효자 상품'이다.
정작 즉석 카메라의 원조인 폴라로이드는 시장 1위였으나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2006년 카메라 생산을 중단했으며 2008년 파산 신청을 했다. 후지필름의 최고경영진도 인스탁스를 놓고 같은 고민을 했으나 '후지필름의 뿌리는 필름이고 필름을 지키기 위해 카메라 역시 포기할 수 없다'고 뜻을 모았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후지필름은 반대로 인스탁스를 적극 키웠다. 폴라로이드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인스탁스는 연 평균 50% 가까운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고 폴라로이드가 사라진 이상 세상에 유일한 제품이 된 점,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수요가 반드시 있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 10~20대 후반 여성층을 주요 대상으로 삼는 마케팅 집중 전략을 펼쳤다. 이 대리는 "아기자기하게 꾸미기를 좋아하는 젊은 여성의 감성을 자극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고 밝혔다.
이에 따라 유통 채널을 전자양판점 중심에서 여성들이 자주 찾는 교보문고, 아트박스 등으로 넓혔다. 캐릭터도 적극 활용했다. 2010년 헬로키티 캐릭터를 새긴 '7S 헬로키티'는 100대 한정판으로 내놓아 예약 판매 이틀 만에 다 팔렸다. 미키마우스, 곰돌이 푸우, 뽀로로 등 다른 캐릭터를 새긴 제품도 잇따라 내놓았다. 젊은 여성층을 집중 공략한 결과 국내 매출은 2009년 270억원에서 2010년 450억 원으로 68% 상승했다.
일본 본사도 놀랐다. 전세계 판매량의 20~30%를 한국에서 소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류 바람을 타고 중국, 동남아에서도 인기몰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인스탁스를 사용하면서 중국, 동남아, 호주 등지의 주문량이 증가했다.
후지필름 본사는 독일에서 열린 세계 최대 사진기자재 박람회 '포토키나 2010'에 한국후지필름 마케팅 담당자들을 초청, 전 세계 지사 관계자들에게 성공 비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본 본사는 달마시안, 핑크도트, 캔디팝 등 한국후지필름의 디자인이 들어간 필름을 일본으로 역수입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에는'꽃무늬'로 유명한 영국의 세계적 생활잡화 브랜드 '캐스키드슨'과 손 잡고 미니필름을 내놓아 화제가 됐다. 한국후지필름의 장보라 디자이너는 "전자제품과 첫 협업을 한 캐스키드슨 여사도 큰 관심을 보였다"며 "필름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매진됐다"고 전했다.
한국후지필름은 앞으로도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데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한국후지필름의 신효원 브랜드 매니저는 "가죽 느낌의 '미니 90'을 내놓는 등 고객들의 아날로그 감성을 계속 자극해 나갈 것"이라며 "젊은 여성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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