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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서관이 책을 비싸게 사는 이유

입력
2014.03.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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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미국 대학의 문제점을 파헤친 책을 써서 이름을 알린 작가를 만났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이 작가는 최근 도서관들로부터 황당한 전화를 받았다. 전화 내용의 요지는 책을 기증해달라는 것. 이유인즉 출판사들이 책을 주지 않아 작가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황당하게 여긴 대목은 "책을 달라"는 도서관의 요구, 그 자체였다. 그는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어이없어 했다. 그는 "미국 도서관들은 오히려 책을 비싸게 산다"고 주장했다.

실제 일부 대학의 문헌정보학과 교수들을 통해 확인해 봤더니 그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미국에서는 책을 출간할 때 종이 한 장으로 간단하게 표지를 장정한 페이퍼백과 딱딱한 표지의 양장본을 함께 출간하며, 양장본이 당연히 페이퍼백보다 비싸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해리 포터 시리즈의 경우 페이퍼백 가격은 약 10달러, 양장본은 17달러다.

그런데도 미국 도서관들은 주로 비싼 양장본을 구입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도서관의 경우 여러 사람이 읽기 때문에 책에 손상이 갈 수 있어 보관을 위해 일부러 튼튼한 표지의 양장본을 구입한다. 또다른 이유는 바로 저작권 개념이다. 즉 여러 사람이 함께 읽는 책이니 이에 합당한 대가를 저자에게 지불해야 한다는 통념이 미국의 공공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들 사이에 형성돼 있다. 도서대여점이란 사업이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미국 도서관들이 비싼 값에 책을 사는 진짜 이유가 바로 저작권에 있다.

그러나 우리 도서관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우리는 양장본과 페이퍼백을 따로 인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 시스템의 문제가 더 크다.

우리 대학이나 대형 공공 도서관들은 주로 입찰제로 책을 구입한다. 이런 제도적 문제 때문에 도서관 사서들이 책을 구입할 때 최대 변수는 가격이 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부분이 국내 출판사들을 어렵게 하고 저자들의 출판 의욕을 꺾는다는 점이다.

비단 도서관 뿐만 아니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청은 동네 서점을 살리기 위해 구청 관할 도서관이나 마을문고에 공급할 책을 동네 서점에서 구입하면서 과도하게 할인을 요구해 논란이 됐다. 출판사들이 온라인서점에 20~30% 할인해 납품하니, 정가보다 20% 싸게 납품하라는 요구였다. 동네 서점을 살리겠다고 책을 구입하면서 오히려 가격 후려치기를 한 셈이다.

공무원들 조차 '책은 싸게 사야 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도서관만 탓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우리 출판시장을 죽이고 동네에서 서점을 내쫓는 문화적 파괴 현상으로 나타나는 점을 한번쯤 돌아봐야 한다.

과거 동네에 최소한 한 두 곳 있던 서점들이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최근 공개한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03년 전국에 3,589개였던 서점이 지난해 말 2,331개로 3분의 1이 줄었다. 경기 의왕, 경북 문경 등 36군데는 서점이 단 1개 뿐이고, 인천 옹진군과 경북 영양ㆍ울릉ㆍ청송군 등 4개 지역은 아예 한 곳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다양하고 많은 저작물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의 지적 활동에 보탬이 되기를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출판해봐야 팔 곳이 없고, 팔아봐야 남는 게 없으니 누가 열심히 지식 노동을 하려 들겠는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환경을 탓하기 전에 사회적으로 저작물을 제대로 대우하고 있는 지 우선 돌아볼 일이다. 꼭 출판물 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만화 등 인터넷에 공짜로 차고 넘치는 콘텐츠들을 보면 과연 좋은 세상이라고 환호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각종 저작물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시장에서 좋은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공급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최연진 산업부 차장대우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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