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군의 장비ㆍ무기를 대상으로 7년 간 2,749건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의 공인시험성적서 조작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정부의 안이한 군수품 품질 관리 탓이 크다.
현재 군수품 품질 검증 제도는 완제품과 핵심 부품에 한해서만 국방기술품질원(기품원)이 직접 품질을 검증하고, 중소 업체가 공급하는 비핵심 품목의 경우 하청업체로부터 부품을 납품 받아 장비와 무기 등을 제조하는 체계개발 업체에 품질 관리를 위임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들 체계개발 업체 역시 경영 효율화를 명분으로 비핵심 품목의 품질 관리를 하청업체에 다시 미뤄 품질 관리에 사각지대가 발생했다는 것이 기품원 측 분석이다. 기품원 관계자는 "업체가 제시한 시험성적서를 검토할 때 규격이 일치하는지 여부만 확인하고 성적서 자체의 위ㆍ변조 가능성에 대해선 연구원들이 간과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성적서가 조작되는 사이 우리 군에는 장병들의 먹거리와 피복, 육ㆍ해ㆍ공군 핵심 무기체계를 망라하는 불량품들이 무더기로 공급됐다. 성적서가 위ㆍ변조된 부품은 특히 전차(K-2)와 장갑차(K-21), 자주포(K-9ㆍK-55A1) 등 육군의 주력 장비에 집중 납품됐다. 기동화력 장비와 부속류에 납품된 부품의 위ㆍ변조는 2,465건으로, 전체의 89.7%에 달했다.
특히 고무류와 가스켓류, 브래킷(지지 구조대), 볼트, 필터류 등 불량 소모성 부품은 해당 기동화력 장비를 장기간 운용할 경우 장비 내구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고가의 대형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에 대한 품질 관리가 엉망으로 된 것도 문제다. 가장 많은 불량 부품이 사용된 무기는 장갑차 'K-21'로, 부품의 시험성적서가 위ㆍ변조되는 경우가 268건이나 됐다. 자주포 'K-9'과 차기 전차 'K-2'(흑표), 구난전차에도 각각 197개와 146개, 110개의 불량품이 들어갔다. 불량 와이퍼 기어 등이 쓰인 한국형 기동 헬기 '수리온' 역시, 장기간 운용 시 내구성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KF-16에는 성능은 물론 안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브레이크 디스크의 성적서가 조작됐다. 해군 무기체계 중에는 울산급 차기 호위함(2,300톤)에 사용된 펌프 주물 제품 등이 성능 및 내구도에 영향을 미치는 불량 부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장병 급식 재료의 경우 장류와 소스류, 가공 식품 등에서 27건의 성적서 조작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고추맛기름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유해 물질로 지정한 벤조피렌이 기준치(2.0)를 초과했지만 수치가 조작됐다.
기품원은 시험성적서가 위ㆍ변조된 품목은 정상 부품으로 교체하되 소모된 품목에 대해서는 해당 군납업체의 부당 이익을 환수할 방침이다. 또 재발 방지 대책으로 23개 공인시험기관과 상호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 시험기관이 발급한 성적서 원본을 기품원이 직접 확인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또 정부와 대표로 계약하는 업체가 중소 협력업체와 계약할 때 이 업체가 제출하는 모든 성적서의 진위를 의무적으로 확인토록 관련 규정을 바꿨다.
최창곤 기품원장은 "이번 성적서 조작 검증이 군수품 품질 향상을 위한 전환점이 될 수 있게 재발 방지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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