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銅ㆍ동) 가격을 알면 경기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구리가 전기ㆍ전자, 자동차, 건설 등 산업 전반에 널리 쓰이고 있어 실물경제의 선행지표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턴어라운드 하면 가장 먼저 구리 값이 뛰고 그 반대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금(金)보다 먼저 경기의 흐름을 예견하는 식견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에서'닥터 코퍼(Dr. Copper)'라는 닉네임까지 붙었다.
■ 코퍼는 '키프러스 산(産)'이라는 뜻의 라틴어 쿠프룸(Cuprum)에서 유래했다. 고대 로마시대에 터키 인근의 키프로스에서 구리가 많이 산출됐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구리에 아연을 섞어 이른바 놋쇠로 불리는 '황동(brass)'을 주조, 동전과 주전자 등으로 사용했다. 구리는 BC 9,000년 이라크 유적지에서 구슬 형태로도 발견됐지만, 성질이 무른 순동(純銅)에 주석을 더하면 단단한 '청동(Bronze)'이 된다는 걸 인류가 알아낸 건 BC 5,000년경으로 추정된다. 청동 농기구와 무기는 문명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 흔히 구리의 3대 강점으로 전기전도성과 항균성, 장식성이 꼽힌다. 금과 은에 비해 매장량이 풍부하면서도, 광택이 아름다워 악기와 단추, 장신구 등에 쓰인다. 영미권에서 경찰이 '코퍼'로도 불리는 건 초창기 제복 단추를 구리로 만든 데서 연유한다. 또 항균 성질이 있어 병실의 손잡이나 문고리에서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19세기 후반 전기의 발견은 구리를 대표적 산업재로 끌어올렸다. 은(銀)다음으로 전기전도성이 뛰어나, 송ㆍ배전선 등 전선 설비에 필수품이 됐다.
■ 구리 값이 최근 연일 추락하고 있다. 2010년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파운드(453g)당 3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세계 구리의 40%를 쓰는 중국의 실물경제가 둔화 조짐을 보이는 탓이다. 또 중국기업들은 수입한 구리를 담보로 비은행권에서 대출도 받는데, 금융시스템 불안으로 리스크가 커지면서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 이것이 중국경제의 위기 시그널인지, 수출에서 내수 중심으로 정책 전환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지 면밀히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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