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인 조카가 선물을 받았다. 알록달록 재미난 그림이 그려진 손바닥만한 상자였다. 조카는 상자가 선물이 아니라, 상자 안에 선물이 있는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안을 휘휘 저으며 어딨어? 어딨어? 하고 묻다가, 잠시 후 뭐라도 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듯 윗도리와 바지와 내복을 훌훌 벗어 상자 안에 집어넣으려고 애를 썼다. "그건 너무 커서 안 들어가는데?" 나는 웃음을 참으며 옷 대신 양말을 벗어 안에 넣으라고 시켰다. 양말을 넣은 후에야 아이는 상자가 자기 것이 되기라도 한 듯 끌어안고 쿵쿵 마루를 뛰어다녔다. 그 애 엄마인 여동생이 옆에서 지켜보다 "쟤도 그러네?"하며 미소를 흘렸다. "큰 애가 저만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 누가 장난감 차를 줬는데, 문을 열고 운전석에 발가락을 집어넣는 거야. 제 딴엔 그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나 봐." 작은 조카를 보며, 큰 조카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에게 크기와 부피의 개념이 생기는 건 언제쯤부터일지 궁금해졌다. 네 살 다섯 살 그 무렵엔 세상의 모든 구멍과 입구가 말랑말랑하게 줄었다 늘었다 하면서 제 몸도 다른 물건도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믿는 걸까. 토끼 굴을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 앨리스가 처음 겪은 모험은 물약을 마시고 25센티 정도로 키가 줄어든 것이었다. 작은 구멍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어린 소망들을, 작가 루이스 캐럴은 그런 식으로 어루만지려 한 것일지도 모른다.
신해욱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