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세 가지 요구를 일본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일본 정부가 이 조건을 모두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일종의 '성의'를 표시하겠다는 의사는 분명히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지난 14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총리가 고노 담화 수정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모양새로는 우리 정부가 제시한 전제조건 중 하나를 수용한 형태다. 당시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주일 한국대사관에 아베 총리의 발언 사실을 미리 알려 아베 총리의 입장이 변화했음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 아베의 고노담화 계승 의지 표명은 12일 방한해 한일 외무차관 회담을 하고 돌아간 사이키 아키타카 일본 외무차관이 다음 날 총리와 관방장관에게 회담 내용을 보고한 뒤 결정된 것이라는 보도도 있다.
하지만 일본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일본 정부는 아베의 고노담화 계승 발언으로 정상회담의 걸림돌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인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당장 16일자에 '한국이 정상회담 수용을 검토한다'는 제목으로 1면에 보도하자, TBS는 한술 더떠 '한미일 정상회담 이달 하순 핵정상회담에서 실현'이라는 리포트까지 했다.
이 TV는 일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지난 7일 미일 정상 전화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이달 하순 네덜란드 핵안보정상회의 때 한미일 3개국 정상회담을 열자고 제안했다"며 "방한한 사이키 외무차관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아베 총리가 역대 정권의 역사인식을 이어갈 것이라는 의향을 한국에 전달하는 등 (정상회담)조정을 계속해왔다"고 전했다. 이어 "아베 총리가 고노담화 계승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에 한국도 정상회담에 응하게 돼 이번 주 안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 대변인이 17일 "일본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 건설적 대화가 가능한 여건이 조성되면 대화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아직도 '진정성'을 촉구하는 단계인 것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할 가능성은 더욱 낮다. 그는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 시절 "(2006~07년) 재임 당시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은 것은 통한의 한"이라고 발언한 데 이어, 지난 해 12월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방문하기 까지 했다.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로 한국, 중국은 물론 미국으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하락세를 이어가던 지지율을 회복하는 반사이익을 얻기도 했다. 보수 우익세력의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야스쿠니 참배 포기 발언은 쉽게 내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대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외교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은 있다. 4월로 예정된 춘계예대제에서도 야스쿠니 직접 참배는 피하고 공물 봉납 등으로 주변 국가를 배려한다는 인상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전문가는 "아베 정권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양국 차관급 협의체보다는 민간 차원의 보상을 통한 도의적 해결을 시도할 것"이라며 "양국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릴 경우 한일 정상회담은 상당 기간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