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희망버스 97대 타고 모인 수천명 "힘내라, 유성기업 노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희망버스 97대 타고 모인 수천명 "힘내라, 유성기업 노조"

입력
2014.03.16 12:10
0 0

"여러분 만나서 진짜 반갑습니다. 진짜 고맙습니다."

154일째 충북 옥천 22m 높이의 광고탑에 올라 농성 중인 이정훈(49) 전국금속노동조합 유성기업지부 영동지회장은 평소 "희망버스가 여기 오면 1시간이라도 말할 수 있다"고 했지만, 막상 마이크를 잡자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대신 희망버스가 떠날 때까지 연신 양팔을 크게 흔들었다. 승객들은 전국에서 가져온 돌로 고공 농성장 앞에 희망 돌탑을 만들고, 응원 메시지를 적은 분홍색 깃발 수백 장을 만국기처럼 엮어 광고탑에 붙였다.

전국에서 3,500여명(경찰 추산 2,000명)을 태운 희망버스 97대가 15~16일 옥천 광고탑 농성장과 충남 아산 유성기업 본사를 찾아 이정훈 지회장을 응원했다. 2011년 한진중공업을 시작으로 현대자동차, 밀양 송전탑 현장에 이은 11번째 방문이다.

서울서 출발한 희망버스 5호 차장을 맡은 김순석씨는 2011년 이정훈 지회장과 함께 해고된 노조원. 김씨는 "우리보다 다급한 곳이 많아 희망버스 와달라는 말은 못 꺼냈다"며 "(유성기업 사태가) 잘 알려지지 않아 노조원들이 많이 힘들어했는데, 오늘 와줘서 다들 신명났다"고 말했다.

1959년 설립된 유성기업은 자동차 엔진 부품업체로 충남 아산공장(본사), 충북 영동공장 등 사업장 7개를 가진 중견기업이다. 2011년 5월 노조가 노사합의 사항인 주간 2교대와 월급제를 시행하라며 파업에 들어간 것이 기나긴 싸움의 시작이었다. 사측은 아산공장, 영동공장을 잇따라 폐쇄했고 이 과정에서 사측의 용역 동원, 노무법인 창조컨설팅에 의한 노조파괴 등이 드러나 이듬해 국회 청문회에서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말 유시영 유성기업 사장의 부당노동행위 개입 혐의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고, 이 지회장에 앞서 홍종인 아산지회장도 2012년 10월부터 151일간 아산공장 근처 굴다리 난간에서 고공농성을 했지만 노사간 교섭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옥천 광고탑 아래에서 이 지회장의 부인 한영희씨는 "남편이 작년 결혼기념일(10월 13일)에 광고탑에 올라가면서 한 달 안에 돌아온다고 했지만 벌써 다섯 달이 지났다"며 "남편이 하루 빨리 가정과 일터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 지회장과 1987년 함께 입사해 같은 해 해고된 도성대(50)씨는 눈물을 훔치며 "이 지회장은 '인디언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며 사태 해결 때까지 고공농성을 한다고 버티고 있다. 힘내라 이정훈, 하지만 힘들면 내려와도 된다"고 외쳤다.

유성 희망버스에는 이를 제안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을 비롯해 박현숙 평등교육실현전국학부모회 대표, 권영국 민변 노동위원장, 송경동 시인 등이 차장으로 참여하고 전국 각지의 시민, 학생들이 탑승했다. 한진과 밀양에 이어 세 번째 희망버스에 올랐다는 주부 조명애(48) 씨는 "요즘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절망적인 분들이 많은데 아이들과 함께 이런 절박한 곳들의 사정을 듣고 공부하러 왔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참가한 대학생 전유미(21)씨는 "(예전 집회를 보면) 나와 상관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희망버스를 타며 우리 사회의 아픔을 공유하게 됐다. 내가 더 얻는 게 많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순천에서 온 중학생 최한님(14)군은 "커서 직장인이 되면 똑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희망버스를 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15일 오후 희망버스가 아산 본사 앞에 집결한 직후 일부 노조원과 시민들이 공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이 최루액을 쏘는 등 50여분 동안 작은 충돌이 벌어졌지만, 큰 사고는 없었다. 이날 경찰 44개 중대, 3,500여명이 공장 주변에 배치됐다. 실랑이 후엔 인디밴드 와이낫,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의 상징인 '밀양 할매들', 민중가수 지민주씨 등의 공연이 이어졌다. 다음날 오전 시민들은 색색의 천에 민주노조 염원을 적어 대나무에 엮은 2m 길이의 '대나무 만장' 120여 개를 아산공장 벽에 설치했다.

이정훈 지회장은 "하루빨리 노조파괴 사업장 특검 실시, 유시영 사장 구속, 노사교섭 재개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추가 희망버스 일정은 18일 유성 희망버스 전국 차장단 회의에서 결정된다.

옥천ㆍ아산=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