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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3월 17일] 규제는 절대 악인가

입력
2014.03.1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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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언급한 규제에 대한 발언을 듣고 내 귀를 의심하였다.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怨讐),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을 자꾸 죽이는 암 덩어리"라는 것이다. "통일은 대박"에 이어 또다시 자극적인 표현으로 국민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 의도는 일단 성공한 것 같다. 그러나 과도한 규제의 정당성과 역할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혼란스러워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규제는 정말 반드시 폐지되어야 하는 절대 악인가. 수술을 통해 암 덩어리를 제거해내듯이 규제를 완전히 제거하면 국가가 발전하고 국민들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인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만연되면서 규제는 기업활동의 자유를 방해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나아가 규제는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시장의 메커니즘을 왜곡하여 비효율성을 조장하는 요소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많은 경우 규제개혁은 곧 규제의 폐지나 규제의 완화를 의미하며, 그 결과는 자유를 증대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개인이나 당사자에게는 규제가 비용이고 자유에 대한 구속을 의미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규제의 의미는 다면적이다. 공익적 측면에서 규제는 가렛 하딘의 표현에 따르면 상호 합의된 강제이다. 사회 전체의 지속적인 발전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합의한 게임의 규칙이자 약정서인 셈이다. 반면, 사익의 관점에서 보면 규제는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을 뿐 관료나 기득권자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모든 규제가 곧 공익을 구현하는 것도 아니듯이 규제완화나 폐지가 반드시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규제의 양을 줄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오히려 규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규제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규제를 정교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규제의 최종적인 효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공개해야 한다.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규제를 걷어내야 하고, 규제 완화를 통해 기존의 독점적인 구조를 더욱 강화하여 이익을 향유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

규제가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규제를 통해 누구의 어떤 자유는 보장하고 어떤 자유는 제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원칙과 기준, 그리고 절차가 명료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엘리너 오스트롬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명작 에서 좋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녀는 거대한 국가에 의한 강제력이나 사유재산권 설정이라는 시장제도라는 양극단을 넘어 소규모 영역단위에서 자발적인 조직과 자치를 강조하고 있다. 규칙을 정하는 데 있어서 구성원들의 합의와 참여, 그리고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투자 활성화 보다 더 시급하게 합의를 거쳐 해결해야 할 과제가 누적되어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과 가장 긴 노동시간, 가장 높은 수도권 집중도, 가장 짧은 주택 거주기간 등이 그것이다. 서민들은 전세대란, 일자리 부족, 가계 부채의 누적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성이 없고 건강하지 못한데 어떤 규제를 풀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새로운 합의된 규제를 만들어서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세입자의 주거안정 문제와 관련하여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개정 경험은 좋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당초 이 법에서는 6개월까지만 세입자들의 거주권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1989년 12월에 새로운 규제가 채택되면서 비로소 세입자들은 2년간 안심하고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합의를 거쳐 세입자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최소한 4년간 거주할 수 있도록 계약갱신청구권이라는 새로운 규제를 채택할 수도 있다. 노동시간 단축이나 정년연장, 수도권 규제도 마찬가지다. 좋은 규제는 우리 사회를 훨씬 풍요롭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중요하다.

변창흠 한국도시연구소 소장ㆍ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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