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모든 연주회는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학습 경험입니다."
환갑을 넘긴 거장 피아니스트는 여전히 지적 호기심과 탐구를 가장 중요한 연주자의 덕목으로 꼽으며 연주회를 준비 중이었다. 헝가리 태생의 영국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61)가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독주회를 연다. 쉬프는 김선욱, 임동혁 등 국내 대표 피아니스트들이 단연 닮고 싶은 연주자로 꼽는 이 시대 대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번 네 번째 방한 무대에서 멘델스존의 '엄격 변주곡'과 '환상곡', 슈만의 피아노 소나타 1번과 '교향적 연습곡'을 들려준다. 쉬프는 바흐, 베토벤 등 고전주의 음악 해석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끊임없는 연구로 방대한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연주자다. 그래서 이번 네 번째 방한의 프로그램인 멘델스존과 슈만은 의외이면서도 기대를 모으는 선택이다. 이메일로 미리 만난 그는 "멘델스존의 음악은 너무 저평가돼 왔다"고 말했다.
"멘델스존은 모차르트보다도 뛰어난 신동이었습니다. 이번에 연주할 곡을 포함해 바이올린 협주곡, 스코틀랜드 교향곡, 이탈리아 교향곡 등 수많은 명작을 남긴 것은 물론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위대한 지휘자였습니다. 또 멘델스존의 동료이자 친구인 슈만은 최고의 낭만주의 작곡가이자 진정한 시인입니다. 그의 피아노곡을 들으면 피아노는 치는 악기가 아니라 노래하는 악기라는 게 분명해집니다."
쉬프는 졸탄 코치슈, 데즈 랑키와 함께 '헝가리 3총사 피아니스트'로 각광 받으며 1970년대 헝가리 피아노 부흥을 이끌었다. 9세 때 공식 데뷔했고 리즈, 차이콥스키,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에서 두루 입상하며 세계 무대를 누볐다. 헝가리 공산주의 시절 모국을 떠나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해 왔다.
사회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행동하는 예술가인 쉬프는 2011년 동료 음악가들과 헝가리 정부의 집시 차별과 동성애 혐오, 반유대주의적 성향에 항의하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발표하는 등 헝가리 우경화 반대 입장을 밝혀 극우주의자들의 표적이 됐다. 그는 "예술가들은 불평등과 사회, 정치 부조리에 대항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며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도 세계의 관심을 환기할 수는 있다"고 강조했다. "헝가리 보수 정권과 극우 정당은 민족주의에 눈이 멀어 역사를 왜곡하고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 때문이든 개인적으로든 헝가리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이번 내한 중 공연 다음날인 26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서울바로크챔버홀에서 마스터클래스도 진행한다. "수업에서 나는 학생들이 작곡가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도울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표현력을 키우려면 12시간의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연습보다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3~4시간의 창조적인 작업이 더 중요합니다. 독서와 박물관 견학, 공연, 영화, 자연을 늘 가까이하라고 말해 주고 싶네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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