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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크 형제의 '바이 아메리카'

입력
2014.03.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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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는 고비용 구조다. 공영방송 PBS 집계에 따르면, 하원 의원은 일주일에 5,000달러, 상원의원은 1만4,000달러의 선거자금이 필요하다. 매일 아침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정치가 아니라 펀드레이징에 온통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미국의 연방제 아래 선거에선 한국처럼 바람을 기대하기 어렵다. 바람을 누를 수 있는 것도 돈의 힘이다. 모은 선거자금만 보면 후보의 당락 예측이 가능할 만큼 미국 선거는 돈 앞에 솔직하다. 이런 정치판에 돈을 든 흑기사들이 나타났다. 미국식 재벌들이 정치에 거액을 대겠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기업인과 얽혀 있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 정치를 분석하는 관점 중 하나도 정계, 재계의 인맥을 살피는 일이다. 문제는 이들이 돈으로 직접 정치를 하겠다는 데 있다. 지금 기업인들은 직접 정책, 정치에 뛰어들어 유권자, 정치인과 직거래를 한다. 자기들이 원하는 정책을 사겠다는 21세기형 정경유착에 기존 정치판은 흔들리고 있다. 워싱턴의 정치인과 기업의 매개 역할을 하는 로비업계의 성장세가 멈춘 것도 이 때문이다.

돈으로 정치에 투신하는 기업인은 민주당, 공화당 성향으로 갈리지만 공화, 그것도 전통적 보수 성향이 압도적이다. 올 11월 중간선거 양상이 민주당과 보수성향 기업인의 싸움으로 전개되는 양상도 여기서 비롯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텍사스의 석유재벌 찰스 코크와 데이비드 코크 형제다. 코크 형제는 최근 경제주간 포브스가 발표한 세계 억만장자 가운데 나란히 6위를 차지했다. 상속받은 비상장사 코크인더스트리의 지분 덕분인데, 두 형제 재산을 합치면 800억달러로 1위인 빌 게이츠보다 많은 세계 최고 부자 형제다.

이들이 회사 경영 말고 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누군가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는 나라를 구해야 한다며 정치권에 돈을 뿌리는 일이다. 코크 형제가 구국이란 정치적 신념을 위해 투입하는 자금 크기와 분야는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다. 이들의 부친 코크가 일찍이 극우 반공단체 존 버치 협회를 세운 것을 보면 그 뿌리 역시 깊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하원을 공화당에 내준 결정적 이유가 된 보수유권자 운동 티파티가 정착되는데도 코크 형제의 돈이 역할을 했다. 대학, 싱크탱크, 예술계에서도 코크 형제의 기부는 정평이 나 있다. 늘 자기네 신념을 옹호하는 연구, 지지라는 조건을 내건 금권 기부다. 이들이 정치권에 내미는 돈 역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바꾸려는, 불법만 아닌 금권선거, 금권정치에 가깝다.

코크 형제 보유한 기업은 미국 100대 오염기업 중 14위인데 이들은 기후변화법 반대 정치인을 지원한다. 또 상원 민주당 다수를 깨뜨려 건강보험개혁법 폐기가 가능토록 공화당 상원 의원 후보들을 돕는다.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헤리 리드는 이런 코크 형제의 행태를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라고 칭했다. 보수 선거캠페인에 무한정 손을 쏟아 부어 민주주의를 변질시키는 반미국화 시도라는 것이다.

코크 형제가 구국의 신념으로 지켜 내야 할 미국과 리드 원내대표가 말하는 민주주의가 정확히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코크 형제로 인해 미국의 정치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억만장자의 탐욕에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리고 것인데 이는 보수, 진보를 구분해 비난할 일이 아니다.

헤지펀드 업계 억만장자 톰 스테이어만 해도 코크 형제 반대편에 서 기후변화법 찬성 정치인에게 1억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미국 신문이 이런 얘기로 거의 매일같이 채워지는 것을 보면 미국 민주주의가 '부자를 위한, 부자에 의한' 것이 되고 있다고 개탄한 진보적 언론인 톰 하트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배우지 말아야 할 미국 정치가 한 두 가지가 아닌 요즘이다.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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