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개편을 앞두고 지상파 방송 3사가 파일럿(편성이 확정되기 전에 시험적으로 선보이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경쟁에 돌입했다.'국민 MC'로 불리는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이휘재 등을 내세운 이들 파일럿 프로그램은 방송 전부터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오르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이휘재 등이 이끄는 프로그램들이 일반인 시청자들의 사연과 출연을 중심으로 한 포맷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본격적인 방송에 앞서 노파심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SBS '짝'에 대한 경찰 수사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들 예능 프로그램들이 얼마나 단단히 준비하고 나섰는지 검증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인기 MC들이 맡은 파일럿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자. 유재석은 KBS '나는 남자다'의 메인 진행자로 나서 남성으로만 구성된 방청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제작진은 19일 첫 녹화를 앞두고 남중, 남고, 공대 등에서 남자들과 주로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며 출연 신청을 받고 있다. 강호동이 진행자로 나선 MBC '별바라기'도 스타와 팬들이 함께 출연하는 심야 토크쇼다. MBC 역시 '별바라기'에 출연하고자 하는 팬들의 사연 신청을 받고 있다. 신동엽이 나선 KBS '미스터 피터팬'은 동호회 등으로 취미생활을 즐기는 일반인들과 중ㆍ장년 남성 연예인들이 함께 출연해 다양한 놀이를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설정이다. 이휘재는 KBS '두근두근 로맨스 30일'에서 세 커플이 30일간 연애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코너를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인도 출연해 연애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한다는 취지의 관찰 예능이다.
이들 프로그램이 일반인 참여를 유도해 시청자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려는 기획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때문에 '짝'의 경우처럼 출연 동의서에 따른 행동 제약이나 사후 관리 등에서 소홀한 점은 없는지 짚어봐야 할 것이다.
지난 2월 폐지된 EBS '대한민국 힐링 프로젝트 화풀이'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관찰 다큐 프로그램이었다. 인간관계 및 생활고 등으로 인해 스스로 화를 참지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카메라에 담겼다. 그러나 최근 이 프로그램에 출연해 방영까지 됐던 한 일반인 여성 출연자가 EBS에 항의하고 나섰다. 그는 제작진에게 자신이 출연했던 방영분과 인터넷에 게재된 기사 등을 없애 달라고 요구했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EBS의 한 관계자는 "관찰 다큐 프로그램의 경우 사전에 출연자들에게 방송의 취지와 의도를 충분히 고지한 이후 촬영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는 방송 이후에 생길 수도 있는 여파나 변화 등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제작진은 이 부분을 간과한 것이다. 방송사는 개인의 일상과 생활 등이 고스란히 공개되기 때문에 사후 관리에도 신경을 썼어야 했다. 결국 EBS측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그녀가 출연한 방송분의 다시보기 서비스 등을 삭제했다. 한 언론시민단체 관계자는 "섭외가 힘든 일반인들을 구슬려 무조건 출연시키고 난 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방송사와 제작진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며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사후 관리 차원에서 재방송이나 인터넷 등으로 겪을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예능은 다큐 프로그램과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인이 출연하는 만큼 경각심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여성 출연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휴대전화와 메신저로 사후 여파에 대한 고민을 전했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일반인 A씨는 "방송 녹화를 끝낸 이후 제작진은 녹화 내용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지 말 것을 당부하며 출연자의 책임만 강요했다"며 "인터넷이나 재방송 등 방영 이후에 대해선 그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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