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현상'은 한 개인의 역량을 검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한영인 연세대 국문학 박사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칼럼 '강신주를 위한 변명'에서 "(강신주 현상은) 현재 대학 인문학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대중 인문학의 현황에 대한 성찰을 비롯해 수많은 논점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매개이자 연결고리"라고 썼다.
수많은 논점 중 하나는 대중이 인문학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인문학의 본질이 '사유와 그에 따른 성역불문의 문제 제기'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소위 '힐링 멘토'를 따르듯 인문학자들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 초중고 교육 현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분위기 속에서는 '인문학적 체질'을 구축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교과 과정에도 인문학에 해당하는 과목이 포함돼 있죠. 그러나 수업 시간에는 벤담의 사상이 뭔지, 플라톤이 무슨 주장을 했는지 짧게 요약하고 넘어가는 수준이니 사고하는 훈련은 불가능합니다." 경기북과학고 국어교사 이미성씨는 2010년 분당 서현고 근무 당시 방과후 고전 읽기 모임인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_달인'을 개설했다. 참여 학생들은 플라톤의 , 푸코의 , 단테의 등 고전을 읽고 토론했다. 요약본이 아닌 책 전체를 읽기로 한 것은 '체질 개선'을 위해서다. "학생들의 독서 방식이 굉장히 소비적이에요. 당장 필요한 책 아니면 읽지 않죠. 입시에 필요 없는 딱딱한 책을 전체 다 읽음으로써 암기식 공부에서 느낄 수 없었던 학문의 즐거움을 알려주려는 겁니다."
인문학을 과목이 아닌 학문으로 접근하는 시도는 정규 교과 과정 바깥에서 더 활발하다. 연세대 인문학연구원은 2012년부터 고교생을 대상으로 1년에 두 차례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서양철학부터 유학, 영문학, 고전 그리스어까지 인문대 교수들이 번갈아 가르친다. 이 연구원에서 강의했던 김용민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청소년 교육 전반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문과대학에 들어오는 학생도 인문학이 뭔지 모릅니다. 어느 정도 연습이 돼 들어와야 하는데 대학이 인문학을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죠. 고교 때도 철학, 문학을 가르치지만 질문과 토론을 바탕으로 사고하는 과정이 빠져 있으니 이걸 인문학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시인이자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오인태 남해교육지원청 장학사는 "교육이 시장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교육과정 개편 없이 영어 회화 강사를 도입한 것, 대학이 인문학부의 명칭을 00과학과로 바꾸는 것이 입시와 취업에 목을 맨 현 세태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철학자 강신주씨를 둘러싼 논란은 인문학 침체 상황에서 일어난 매우 역설적인 현상입니다. 끝없는 스펙 경쟁으로 인간 중심의 모든 가치가 부정되는 상황에서 역으로 인문학자들의 말이 대중적 호소력을 가지게 되는 거죠. 인문학자들이 쉽게 풀어주는 철학 이야기에서 고민을 해소하는 것도 좋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학교를 시장에서 분리시키는 겁니다. 중고교에서 안 되면 최소한 대학에서라도 인문학을 복원해 국민적 교양으로 강조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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