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단골 후보 필립로스가 1969년 발표한 세 번째 장편소설유대 문화 혐오하는 주인공 생애를 정신분석학적 독백으로 담아내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 꼽히는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81)의 초기 장편소설 은 무려 400페이지에 달하는 정신분석학적 독백이다. 그렇다고 무슨 복잡하고 난해한 해석을 요하는 상징들로 가득 찬 텍스트를 떠올리면 안 된다. 이보다 직정적이고 직설적일 수는 없다. 아이큐 158의, 한번도 수재를 놓쳐본 적 없는 서른 세 살의 엘리트 변호사 앨릭잰더 포트노이는 지금 정신과 의사의 긴 벤치에 누워 자신의 생애를 구술하고 있다. 한 차례도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필시 핏대를 잔뜩 세운 채 갈라진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수시로 꽉 쥔 주먹을 내리치며 그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유대인 문화에 대한 혐오와 도착적 자위행위로 점철된 한 빛나는 수재의 생애를.
은 문제작이다. 1969년 발표된 로스의 이 세 번째 장편소설은 유대인 비판과 비하,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성적 비속어들로 미국 사회를 순식간에 뒤흔들었던, 논란의 소설이다. 훗날 작가가 와의 인터뷰에서 "석 달 간 숨어 있어야 했다"고 고백했을 정도. 미국 도서관들의 금서 지정과 호주의 수입 금지 등 호된 스캔들을 겪은 후에야 영문학의 고전 반열에 오르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등 시대와 사회, 정치와 인간에 대한 묵직하면서도 신랄한 통찰이 빛나는 후기 대표작들과는 사뭇 다르다.
자전적 요소가 꽤 강한 이 소설은 줄거리로는 간단히 요약된다. 배운 건 없지만 집요하고 성실한 성격 덕분에 중산층 가정을 꾸리게 된 보험판매원 아버지와 예의 바르게 보여야 한다는 강박과 숨막히는 결벽증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두뇌를 갖고 태어난 '나'가 성공에 대한 강요와 유대문화의 억압에 견디지 못하고 성적 도착에 빠져드는 이야기다. 그 자신 유대인인 작가는 '수난과 핍박의 선택된 민족' 유대인들을 향해 "내 민족이여, 제발 부탁인데, 당신네 고난의 유산은 당신네 고난 당하는 똥구멍에나 꽂아주세요. 나는 공교롭게도 한 인간이기도 하단 말이야!"라고 외친다. 그 외침이 유대인들에게 상처를 가할 수 있는 것은 공격의 주체가 선택 받은 민족의 선택 받은 아이, 미국 사회의 최상류층에 안착한 듯 보이는 젊은 엘리트 변호사라는 점 때문이다.
필립 로스는 점잖게 팔짱을 끼고 앉아 사유하는 작가가 아니다. 격렬한 분노의 에너지로 서사를 밀고 나가는 그의 소설이 사춘기 소년의 리비도와 부모살해 충동을 만났으니, 소설은 그야말로 폭발한다. 의사와의 문답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포트노이의 독백뿐이다. 건강한 똥을 누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춘기 소년인 '우리 아기'의 변기를 들여다보겠다는, '조심해라!'와 '주의해라!' 가 세계관인 히스테리적인 어머니는 포트노이로 하여금 "부모가 살아있는 유대인 남자는 계속 열다섯 살 난 애"라고, 더 이상 "우리를 훌륭해지라고, 착해지라고 다그치지 말라"고 절규하게 만든다.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우리는 죽었을 것이라는 누나의 말에 포트노이는 "나는 나치가 이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핑계라고 생각해!"라고 외친다. 부모에게 배워 가장 먼저 구별하게 된 것이 "밤과 낮도 아니고,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도 아니고, 이방인과 유대인"인 포트노이는 감출 수 없는 자신의 긴 매부리코를 혐오하며 이방인 소녀를 찾아 서른 중반이 되도록 섹스의 오디세우스로 살아간다. 유대인 여자와 결혼해 유대 가정문화를 계승할 것을 요구하는 부모의 기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이 책의 성적 묘사를 외설적이라든가 도발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네이버 연예 기사의 댓글을 능가하는, '상스럽다'로도 부족해 '쌍쓰럽다' 정도는 표기해 줘야 정확한 전달이 가능한, 언어 층위 최하단부의 성적 어휘들이 단지 한번 사용되는 정도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그래야만 했으므로 그렇게 쓴 것이지만, 어떤 독자들에게는 상당한 피로감을 줄 수도 있음을 일러둔다. 그럼에도 포트노이라는 이름은 잊지 않는 게 좋겠다. 미국인들에게는 의 홀든 콜필드 맞먹는 반항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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