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건이 넘는 정보 유출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이 그나마 국민들을 달랠 수 있었던 명분은 "정보의 2차 유통이 없다"는 것 단 한 가지였다. 비록 사상 최대 규모의 정보가 유출되긴 했어도 시중에 유통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직접적인 피해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로 2차 유통 사실마저 확인이 되면서 이제 금융당국은 벼랑 끝에 몰리게 됐다. 감독 부실에 따른 정보 유출의 원인 제공, 늑장 후속 조치와 텔레마케팅(TM) 금지를 비롯한 무리한 대응, 그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확실한 근거도 없이 "2차 유출은 없다"고 단언해 국민들을 기만한 책임까지 피할 수 없게 됐다.
지금까지 금융당국은 정부의 2차 유출 가능성이 0%라고 단언해 왔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2차 피해 가능성은 없으며 피해자들이 신규 카드를 발급받지 않아도 된다"(최수현 금융감독원장, 1월23일 국회 정무위원회) "이번 사태에 따른 2차 피해는 없다고 확신한다"(신제윤 금융위원장, 2월13일 국회 카드사 정보유출 국정조사) 등의 발언을 잇따라 내놓았다. 금융당국이 1월말 발표한 '카드사 고객정보 유출 관련 개인정보 보호 가이드' 자료에서는 "최근 3개 카드사에서 유출되었던 정보는 전량 회수되었고 시중에 유통되지 않았으니 전혀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며 "유출된 정보가 이미 회수돼 피해 가능성이 없으니 기존 카드를 그대로 사용해도 된다"고 했다.
불안감에 카드사와 은행으로 몰려가 카드를 재발급하거나 해지한 이들도 많았지만, 대다수는 금융당국의 말을 믿고 아무런 조치 없이 기존 카드를 사용해 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카드 3사에서 유출된 8,500만건(1억500만건에서 사망자, 기업, 가맹점 등 제외) 중 지금까지 재발급되거나 해지, 탈회된 카드는 1,077만개에 불과하다. 금융당국 말만 믿고 아무런 조치 없이 기존 카드를 사용해 온 국민들로선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검찰 역시 "유출여부는 계속 수사 중"이라고 했지만, 2차 유출은 없다고 공언했던 터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금융당국은 대응 방안을 논의하느라 다시 분주해졌다. 하지만 불과 며칠 전인 10일 이번 정보 유출과 관련된 종합대책을 발표한 터라 내놓을 수 있는 추가 대응책도 바닥이 난 상태다. 금융위원회 한 관계자는 "정보가 추가로 넘어간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시중에 유통돼 금융 사기 등에 이용됐다는 피해 신고는 없다"며 "검찰 수사 내용과 향후 추이를 지켜보는 것 외에 다른 방안이 없다"고 곤혹스러워했다.
금융당국에 대한 고객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정보유출된 카드 2장을 지금까지 사용해 왔다는 회사원 김종윤(45)씨는 "도대체 어떻게 금융당국을 믿으란 말이냐"며 "더 이상 책임을 비껴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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