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달았던 감독 직함을 내려놓았다. 일선에서 물러나 경희대 농구를 총괄하는 부장 자리로 옮겼지만 아직도 이름 뒤에 꼭 ‘감독’이란 말을 붙여야 할 것 같다. 최부영(62) 부장은 지난달 28일 MBC배 대학농구대회를 마지막으로 정년 퇴임했다. 13일 경기 용인에 위치한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만난 최 부장은 사령탑에서 물러난 지 열흘 이상이 지났는데도 청춘을 다 바친 코트를 쉽사리 떠나지 못했다. 자리만 달라졌을 뿐 환경이나 일상 생활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비주류를 주류로 만든 15년
최 부장은 1985년 경희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1983년 현역(삼성)에서 은퇴한 뒤 가정에 충실하고 싶어 지도자 생활을 고사하고 평범한 회사원을 자청했다. 그래서 의류업체 제일모직 대리로 입사했다. 운동만 했던 그에게 사회 생활은 쉽지 않았다. 이리저리 좌충우돌을 겪던 중에 모교인 경희대에서 지도자 제의를 해왔다. 고심 끝에 지휘봉을 잡았지만 현실은 막막했다. 팀은 바닥권에 있는데다 스카우트 경쟁도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 등에 밀렸다. 최 부장은 “1년에 1, 2승을 올렸던 시절이었다. 1991년 강 팀들이 빠지고 대진 운이 좋아 전국체전 우승을 했지만 4강권으로 들어간 건 15년 뒤인 1998년이다. 그 해 김성철(KGC인삼공사 코치), 강혁(삼일상고 코치)을 주축으로 MBC배 우승을 했다. 이후부터 근성과 투지를 상징하는 자주색 군단이 팀 컬러로 굳어졌다”고 회상했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올라선 경희대는 2011년 명실상부한 대학 최강팀으로 우뚝 섰다. 김민구(KCC), 김종규(LG), 두경민(동부) 등 탄탄한 전력을 갖춰 모든 대회를 휩쓸었다.
애제자 김종규-김민구의 신인왕 경쟁, 공동 수상은 안 되나
최 부장은 수백 명의 제자를 양성했다. 그런데 올해처럼 프로에 간 제자들이 동시에 신인왕 경쟁을 펼친 건 처음이다. 1순위 출신 김종규는 소속 팀의 17년 만에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고, 김민구는 뛰어난 개인 기량을 앞세워 리그를 주름잡았다. 최 부장은 “종규나 민구 모두 프로에 가서 잘 하는 것을 보면 가슴 뿌듯하다. 이틀 전에 둘이 학교를 찾아왔길래 신인왕 욕심은 마음으로만 담고, 절대 옥신각신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랬더니 둘은 서로가 받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최 부장은 기억에 남는 제자로 이창수(삼성 스카우트)를 꼽았다. 그는 “창수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해 정말 고통스러운 훈련을 시켰다. 아침부터 새벽 3시까지 기계적으로 맞춤형 농구를 했다. 한 번은 짐을 싸 나갔는데 우연히 일기장을 보니 밥을 많이 먹고 싶다는 내용이 있더라. 짠하고 미안했다. 그래도 몸 관리를 잘해 최장수 선수(42세)로 남은 것을 보면 자랑스럽다”고 설명했다.
화려한 패션, 화통한 항의
최 부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화려한 패션과 열정적인 벤치 매너다. 패션 감각은 제일모직에서 근무할 때 완성됐다. 집에 옷 방 하나가 따로 있을 정도다. 최 부장은 “당시 의류 사업부서에 있었다. 디자인도 직접 디자이너와 상의하고 품평회를 하면서 나름대로 패션 감각을 갖춘 것 같다. 대학 코트는 학생들이 뛰는 무대다. 우중충한 색보다 밝고 화려한 색의 옷을 입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 감독으로서 볼거리도 제공하는 것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최 부장은 또 불 같은 성격을 지녔다. 그는 “휘슬이 나올 때마다 항의를 하는 것은 맞지 않다. 심판들도 사람이라 실수한다. 그러나 승부처에서 오심이 나오면 강하게 어필을 하는 편이다. 특히 자신의 판정이 계속 맞다고 우기는 심판은 더 몰아붙여 해명을 들으려고 한다. 오심을 인정하면 거기서 끝낸다. 내 성향을 아는 심판은 잘못된 휘슬을 불 때 미안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최 부장은 이제 지휘봉을 넘겨받은 김현국 감독에게 온 힘을 실어줄 예정이다. 김 감독은 15년간 코치로 최 부장을 보필했다. 최 부장은 “좋은 성적을 내야 제자들이 프로에 갈 때 상위 지명을 받고 간다. 또 고등학교에서 한 명이라도 좋은 선수를 데려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용인=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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