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마술)은 계속된다.”
크림반도를 둘러싸고 미국을 포함한 서방측과 러시아의 힘겨루기로 우크라이나의 정세가 살얼음 형국인데 반해 테니스에선 뜻밖의 대형 스타 탄생으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잠시 시름을 덜고 있다.
주인공은 알렉산드르 돌고폴로프(26)다.
돌고폴로프는 1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인디언웰스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인디언웰스 단식 8강전에서 밀로스 라오닉(22ㆍ캐나다)을 1시간 18분만에 2-0(6-3 6-4)으로 따돌리고 준결승에 성큼 올랐다. 자신의 생애 첫 ATP 1000시리즈 4강이다. 우크라이나 선수론 1997년 ATP 함부르크 오픈 챔피언 안드레이 메드베데프 이후 17년 만이다.
1번시드 라파엘 나달(28ㆍ스페인)과 13번 파비오 포그니니(28ㆍ이탈리아)에 이어 10번 라오닉까지 상위 시드배정자를 차례로 꺾는 파죽지세다. 28번 시드 돌고폴로프는 “나는 오늘 무척 빨랐다”고 활짝 웃었다. 이어 “라오닉의 서브(최고 233km)는 매우 빨랐지만 대응하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캐나다산 ‘핵 서브’라오닉은 16강전에서 33개의 서브에이스를 퍼붓고 8강에 올랐지만 돌고폴로프를 상대해선 단 4개에 그쳤다. 오히려 돌고폴로프가 6개를 꽂아 넣었다. 라오닉은 “생각이 많은 경기였다”고 털어 놓았다. 실제 라오닉은 2세트 게임스코어 3-0으로 앞서갔으나 돌고폴로프에 덜미를 잡혔다. 돌고폴로프는 이로써 올 시즌 두 번째 결승 진출을 노리고 있다. 상대는 로저 페더러(33ㆍ스위스)다. 돌고폴로프는 “이번 주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상대가 누구든 이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또 “강력한 선수들을 물리치고 이 자리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페더러와의 상대 전적은 2010년 당한 1패다.
올 시즌 랭킹 57위에서 출발한 돌고폴로프는 26계단을 뛰어넘어 다음주 발표될 ATP랭킹 23위 자리를 예약해 놓았다. 최고랭킹은 2012년 13위까지 올랐다.
돌고폴로프는 세살 때 라켓을 처음 잡았다. 투어 코치로 활동하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메드베데프를 프랑스오픈 결승까지 조련한 돌고폴로프의 부친은 2008년까지 직접 코치로서 아들과 함께 했다. 어머니도 유럽 체조선수권대회에서 금, 은메달을 획득한 선수출신이다. 타고난 운동신경은 집안내력인 셈이다. 그는 키 183cm에 몸무게 73kg으로 호리호리한 체격이지만 순간 임팩트와 코트 커버력이 뛰어난 편이다. 대각선 깊숙이 파고드는 양손 백핸드도 일품이다.
나달도 “돌고폴로프의 크레이지 모드에 당했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2006년 프로에 데뷔해 메이저대회 최고성적은 2011년 호주오픈 8강과, 같은 해 US오픈 16강행으로 크게 빛을 보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전문가들은 돌고폴로프에 대해 향후 남자테니스 ‘빅4’(나달, 페더러, 조코비치, 머레이)체제를 허물 수 있는 카드 중의 한 명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돌고폴로프외에 그리고르 디미트로프(22ㆍ불가리아), 어네스트 굴비스(25ㆍ라트비아), 케빈 앤더슨(28ㆍ남아공), 마린 칠리치(26ㆍ크로아티아)가 유력 후보로 꼽히고 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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