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신비 얼마나 아낄 수 있나음성 통화료 30~40% 저렴월 평균 1만 7000원 수준2년간 쓰면 최대 45만원 아껴● 작년 9월 우체국 가세로 폭발온라인·홈쇼핑 통하던 가입자 모집중장년층 접근성 크게 개선돼작년 4분기에만 37만명 늘어나● 커지는 시장, 장애물은중소업체 단말기 대량 확보 어렵고대기업 계열사 점유율 확대 논란이통3사도 시장 직접 참여 노려경쟁 체제 유지할 대책 마련해야
직장인 정모(52)씨는 지난달 말 통신비 요금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직장 동료 소개로 '월 1만4,000원 기본료에 음성 통화 100분, 문자 100건, 500MB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받는' 우체국 알뜰폰에 가입했는데, 요금고지서엔 1만5,400원이 찍혀 있었다. 기존 이동통신사를 썼을 때 월평균 3만7,000원 정도를 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액수였다. 그는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고지서를 받아 보니 정말로 바꾸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알뜰폰 돌풍이 의외로 거세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국내 알뜰폰 가입자 수는 248만명. 2010년 7월 도입 이후 가입자가 조금씩 늘더니 작년 한 해에만 122만명이 순증했다. 월평균 10만명 이상 꾸준히 늘고 있는 셈이다. 전체 이통사 가입자(5,400만명)에 비하면 4.5%에 불과하지만 성장속도만큼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알뜰폰, 왜 돌풍인가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낮은 통신비다. 알뜰폰을 이용할 때 드는 음성통화료는 기존 이동통신요금에 비해 평균 30~40%, LTE는 10~20%가량 저렴하다. 우정사업본부가 지난달 말 현재 우체국 알뜰폰을 1개월 이상 사용한 고객 3만명의 통신 요금을 분석했더니, 이들은 월평균 1만6,712원을 납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동통신 3사의 가입자당 월평균 요금(ARPUㆍ3만4,399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우정사업본부의 알뜰폰 사업자가 지난 10일부터 선보인 18가지 요금제를 봐도, 기본 요금이 비슷한 이동통신사 요금제보다 월 8,000~1만9,000원 저렴하다. 이 상품을 24개월 이용했을 경우, 15만6,000~45만원을 아낄 수 있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그러다 보니 기존 이동통신사 가입자 중에서 알뜰폰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많다. 쓰던 번호 그대로 번호이동도 가능하고, 기존 단말기를 그대로 쓰면서 유심카드만 바꿔 쓸 수도 있다. 우체국 알뜰폰의 경우 지난해 10월에는 새 가입자 10명 중 7명이 단말기까지 새로 구입을 했지만, 올 1월에는 신규 가입자(2만4,037명) 중 단말기를 산 고객은 45%에 불과했다. 김성택 우정본부 사무관은 "요금제가 저렴하더라도 단말기를 새로 살 경우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 단말기도 기존 것을 쓰면 비용을 더 많이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한 해만 총 54만8,470명이 기존 이동통신사에서 알뜰폰으로 번호 이동을 했는데, 이는 기존 3사 중 유일하게 가입자가 늘어난 LG유플러스(54만4,979명)보다도 많은 인원이다.
통신비를 아껴 보려는 이들을 위한 메뉴(요금제, 단말기 종류)가 다양한 점도 강점. 전화요금을 미리 내고 통화 때마다 충전금액에서 빠져나가는 선불제, 일정 기간 단말기를 쓰는 조건으로 요금을 할인 받는 약정제, 단말기는 그대로 쓰면서 서비스만 바꾸는 후불제 상품 등을 갖추고 있다.
네트워크의 힘
지난해 알뜰폰 비약적 증가의 일등 공신은 우체국과 이마트였다. 작년 9월 우정사업본부가 전국 226개 우체국(현재는 232개)에서 6개 중소 사업자의 알뜰폰 판매를 시작하고, 10월에는 국내 1위 대형마트인 이마트가 알뜰폰 가입자를 모으면서 4분기에만 37만 명 가까이 가입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요금이 저렴하고 편리해도 대리점이나 판매점망이 부족하면 가입자를 모을 수 없다. 우체국과 이마트에서 알뜰폰을 취급한다는 건 전국 구석구석까지 들어가 있는 우체국과 이마트 매장이 알뜰폰 대리점이 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우체국 알뜰폰의 등장은 가장 강력한 촉매제였다. 업계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신규 회원 가입을 대부분 홈쇼핑, 텔레마케팅, 온라인 등을 통해 진행하다 보니 중장년층은 접근을 어려워했고 가입 과정에서 서비스 품질이 떨어진다는 지적과 함께 신뢰도가 부족했다"며 "정부기관인 우체국에서 알뜰폰을 판매하면서 판매망 부족과 신뢰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됐다"고 말했다. 우체국 알뜰폰은 판매 시작 5개월 만에 가입자 7만명을 넘어섰다.
현재 알뜰폰은 대형마트 편의점 농협하나로마트 신협 새마을금고 등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휴대폰 판매 대리점은 알뜰폰을 가입할 수 있지만 점원들이 권유를 잘 하지 않았다"며 "지금은 적어도 주요 도시에서는 쉽게 알뜰폰을 접하고 가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넘어야 할 산
알뜰폰의 순항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단말기다. 노인 청소년을 넘어 일반 가입자까지 끌어 모으려면 좋은 스마트폰 확보가 필수인데, 알뜰폰 사업자 대부분이 중소업체다 보니 휴대폰 제조사로부터 단독으로 대량의 단말기를 공급받기가 쉽지 않다. 중고폰이라면 모를까, 적어도 삼성전자 갤럭시나 애플 아이폰 새 제품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알뜰폰에 가입하는 게 불가능한 실정이다.
한국알뜰통신사업자협회 중심으로 국내 제조사나 중국에 공장을 둔 국내 회사에 의뢰해 직접 일정 물량을 공급받는 공동조달제를 추진하고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김홍철 회장은 "중국산에 대한 국내 고객들의 거부감이 크다"며 "국내 제조회사들은 이익이 많이 남는 고가의 스마트폰 중심으로 만들다 보니 기능을 줄이되 가격을 낮춘 자급제폰 생산을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짜폰이 난무하는 보조금 경쟁도 큰 걸림돌이다. 김 회장은 "최신형 스마트폰도 보조금 때문에 싸게 혹은 거의 공짜로 구입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소비자들이 굳이 중저가 제품을 찾을 이유가 없다"며 "보조금 문제가 해결돼야 중저가 폰의 수요가 늘고 제조사들도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동통신사들이 의무적으로 구형 휴대전화를 수거해 폐기하도록 돼 있는 물량 중 일부를 알뜰폰으로 활용토록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힘의 역학
대기업의 알뜰폰 사업 참여도 논란거리이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원식(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3년 말 기준으로 CJ헬로비전, SK텔링크, 이마트, KCT(태광그룹) 등 대기업 계열사의 알뜰폰 시장 점유율은 44.5%였다. 집계에 포함되지 않은 삼성에스원과 홈플러스의 점유율까지 감안하면 50%를 넘어선다는 평가다.
알뜰폰이 시작될 때만 해도 13개 알뜰폰 사업자 중 KT파워텔과 KCT를 빼고는 중소업체였고, 상위 1~4위 전부 중소업체였다. 하지만 갈수록 대기업 계열의 위력이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 시장에 뛰어든 삼성에스원은 삼성전자로부터 전용 단말기를 공급 받고 삼성모바일숍과 삼성디지털플라자를 유통 채널로 활용하면서 단숨에 업계 3위로 뛰어올랐다.
일각에선 알뜰폰에 대기업들이 뛰어드는 것을 '골목상권 침해'로 보지만, 대기업 계열사들은 그렇게 볼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CJ헬로비전 관계자는 "알뜰폰 시장 전체의 파이를 키우고 이동통신사들과 망 임대료 협상에 있어 업계를 대표해 목소리를 내면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단말기 공급 조달, 유심 공동 수급 등 중소업체들과 협력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망을 빌려 주는 이동통신사들과 빌려 쓰는 알뜰폰 사업자와의 관계도 미묘하다. 물론 현재까지는 양 쪽이 공존하고 있지만, 알뜰폰 시장이 더 커질 경우 과연 이동통신사들이 지금처럼 우호적 태도로 나올지는 불분명하다. 만약 알뜰폰이 더 큰 성공을 거둔다면 현재 SK텔레콤이 자회사 SK텔링크를 통해 이 시장에 간접 참여하고 있듯, KT와 LG유플러스도 발을 들여놓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업계에선 KT와 LG유플러스가 알뜰폰 추가 사업 진출을 위해 정부와 접촉 중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한 알뜰폰 업체 관계자는 "전국 판매망을 가진 이동통신사들이 알뜰폰 고객까지 나서고, 만약 여기에 보조금까지 더해진다면 중소 사업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정부는 '가계 통신비 인하'의 오랜 정책 목표를 이뤄내기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알뜰폰에 힘을 싣고 있다. 장기적으론 알뜰폰 가입자를 600만명, 가입자 비중을 10~15%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최원식 의원은 "과거 6개 이상의 사업자가 경쟁하던 이동통신시장이 결국 3개 사업자 과점 체제로 재편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며 "경쟁을 통한 통신비 인하라는 처음 취지가 살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