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27일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울 우면산 산사태가 '120년만의 폭우로 인한 천재지변'이라는 1차 조사 결과를 뒤집고 '사실상 인재'로 최종 결론이 났다. 사망자가 많았던 일부 지점의 당일 강우량은 '5년~20년만의 폭우'로 분석돼 이례적인 양의 호우로 보기 어렵고, 2010년 태풍 곤파스 피해 이후에도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는 점을 서울시가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강우량과 산사태 간 인과관계에 대한 규명이 빠져 향후 소송에서 개별 피해 입증 책임은 유족 몫으로 남게 됐다.
5년에 한 번 꼴로 내리는 비에도 산사태 발생했다
서울연구원은 대한토목학회 조사와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 의견 수렴 결과, 우면산 산사태는 5년~107년을 빈도로 내리는 집중호우와 약한 지질, 집중 강우 대비부족이 원인이라고 13일 밝혔다. 2011년 1차 조사와 2차 보고서 초안의 '120년 만의 집중호우가 원인'이라는 분석과 비교하면 강우빈도가 약해진 것이다. 특히 가장 많은 사망자(6명)가 발생한 전원마을에는 당시 5년 이하~20년에 한 번 꼴로 내리는 비교적 일상적인 폭우가 내렸고 3명이 숨진 방배동 래미안 아파트 강우빈도는 12년, 임광ㆍ신동아아파트(2명)는 10년, 양재자동차학원(1명)은 5년에 불과했다. 다만 송동마을 등(4명)은 5년 이하~107년으로 분석됐다.
원종석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오전 9시를 대표 기준시간으로 적용한 이전 조사와 달리 이번에는 119 접수시간, 목격자 진술 등을 고려, 산사태 발생 시간을 세분화했다"고 밝혔다.
공군부대 등 인공구조물 영향은 정말 없나
아주 이례적인 폭우가 아님에도 산사태가 일어났다면 인공시설물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지만 조사단은 명확한 분석을 내놓지 못했다. 산사태가 시작된 곳으로 지목된 우면산 정상의 공군부대 연결 지역에서 7명이 숨졌지만 조사단은 산사태 직전과 직후 계측자료가 없어 영향을 평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동안 산을 깎아 공군부대를 짓는 과정에서 지질은 물론 배수시설도 취약해졌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었다. 서초터널 발파와 등산로도 원인이라는 의견이 일부 제시됐지만 표준 데이터가 없다는 이유로 영향이 미미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조사단은 2010년 태풍 곤파스 발생 때 산사태가 일어난 우면산 덕우암 지구 일부에 대해서만 사방공사가 이뤄진 것이 피해를 키웠다며 서울시의 책임을 지적했고 시도 이를 시인했다. 조성일 서울시 도시안전실장은 "곤파스 피해 이후 복구가 미흡했다는 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입증 책임은 유족 몫으로… 끝나지 않은 논란
산사태 발생 2년 반 만에 향후 소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최종보고서가 나왔지만 유족들의 반발 등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사실상 인재'라고 결론 났지만 강우량이 지점별 산사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분석이 빠진 탓이다. 임방춘(67) 유족 대표는 "1차 조사에 비해 진전됐지만 규명이 미흡한 부분이 있어 소송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TF에 참여한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전문가 간 이견과 긴급복구로 사고 현장이 유지되지 못한 한계로 인공시설물 영향이나 강우와 산사태 간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했다"며 "소송에서 개별 피해 입증은 유족 몫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유족들은 서울시, 서초구, 국방부 등을 상대로 7건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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