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워싱턴 외교가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북한 핵 문제를 비교하는 게 유행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 우크라이나는 북한처럼 핵을 보유한 국가였다. 핵무기 보유량이 미국 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로 영국 프랑스보다도 많았다. 그러나 94년 미국 영국 러시아는 신생 독립국인 우크라이나에게 핵 포기를 종용하며 그 대가로 영토주권의 보호를 약속했다. 이들 국가는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점령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핵 포기 20년이 지난 뒤 러시아는 군대를 보내 크림반도를 장악했고, 미국과 영국은 이에 맞서 구체적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어느 국가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셈이다. 이런 상황을 맞이한 우크라이나 정치권에선 그때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이번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후회가 일고 있다고 USA투데이는 전했다. 만약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러시아가 군사력을 동원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반성이다. 우크라이나 의회 파블로 리자네코 의원은 "당시 우리는 이런 약속을 믿고 핵무기를 포기했다"며 "그때 우리가 (강대국을 믿은) 실수를 했다는 후회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강대국의 약속에 실망한 우크라이나 정치권은 핵 보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어떤 해결책을 찾든 우크라이나 스스로 더 강력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에서는 이 같은 우크라이나의 반성이 북한과 이란에게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 동안 우크라이나는 북한이 핵무장을 포기하고 경제지원과 안전보장을 받는 길을 택해야 하는 좋은 선례였다. 하지만 워싱턴 소식통은 "북한으로서는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리비아 문제와는 또 다른 모델이란 점에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리비아의 경우 핵 포기 이후 국내 사태로 정권이 무너졌지만, 우크라이나는 핵 포기를 조건으로 주권 보장을 약속한 강대국에 의해 영토가 침탈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사태는 북한의 핵 포기 불가 입장을 더욱 굳히는 사례가 될 것이란 평가를 낳고 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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