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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3월 14일] <구 일만 햄릿>의 변신 이야기

입력
2014.03.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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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기타의 30%를 생산하고 유통한다는 (주)콜트악기와 (주)콜텍의 기타는 이제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는다. 2007년 박영호 사장이 경영상 위기를 이유로 인천과 대전의 공장을 폐쇄하고 공장을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이 급작스레 정리 해고됐다. 경영 위기 탓이라지만, 당시의 콜트악기는 차입금 의존도 0%, 이익잉여금 67억1,000만원, 부채비율 37%의 건실한 기업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콜트ㆍ콜텍 해고 노동자들의 투쟁은 올해로 무려 8년째에 접어든다. 여전히 천막 농성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김경봉씨는 농성 시작 당시 대학에 입학한 첫째 딸이 이제는 서른이 다되었다며 담담하게 그 시간의 길이를 회고한다. 부당한 사실을 알리고 바로 잡기 위해 시위뿐 아니라 수많은 문화 활동을 해온 이들은 직접 기타와 악기 연주를 배워서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밴드 즉 '콜밴'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시작했고 음악을 비롯한 여러 분야 문화예술인들의 연대도 이끌어냈다. '노 뮤직, 노 라이프(No Music, No Life)'라는 기치 아래 국내외 뮤지션들은 콜트 기타 불매 운동을 펼치며 꾸준한 지지를 표했고, 기타리스트 신대철 씨는 라는 콘서트에 참여하며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고 작년 말, 서울 혜화동 1번지 소극장에서는 이라는 이름의 공연이 올려졌다. 은 9일 동안 공연되는 햄릿이라는 뜻으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빌어 이들이 어떤 이유에서 햄릿을 연기하게 되었는 지까지를 관객들이 엿볼 수 있도록 만든 다큐멘터리 형식의 연극이었다. 밴드의 연주자였던 멤버들은 이 극에서는 햄릿을 연기하는 배우가 되었고, 그 뒤에는 수 개월간 천막농성장을 오가며 이들의 무대를 정성으로 만들어낸 '진동젤리'가 있었다.

하지만 해고노동자들의 머리칼에 서리가 내리고 연주자에서 연극배우가 되도록 야멸찬 현실은 쉽사리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2009년 콜트ㆍ콜텍의 노동자 해고가 불법이라는 판결이 내려졌지만, 박영호 사장은 단 한 차례의 정식 교섭조차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급기야 2012년에는 콜트와 콜텍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엇갈렸다. 같은 회사지만 콜트의 노동자 해고는 부당하고 콜텍의 해고는 부당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하루 만에 농성장이 잔칫집에서 울음바다로 바뀐 사건이었다. 그리고 올해 1월 10일, 콜텍의 해고 노동자 24명이 콜텍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노동자들이 패소했다. 이 결과는 콜밴이자 구 일만 햄릿의 주인공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현재는 햄릿의 부재로 예약되어 있던 외부의 초청 공연들도 잠정적으로 연기된 상태다.

필자도 함께 참여하고 있는 미술가 그룹인 '옥인 콜렉티브'는 14일부터 4월 13일까지 한 달간 벌어지는 다원예술축제 페스티벌 봄에서 공연할 새로운 작업인 에 의 배우인 이인근과 임재춘 그리고 이 연극의 공동 연출인 진동젤리의 권은영과 매운 콩을 초대한다.

옥인 콜렉티브의 는 연극 의 거울 버전이다. 햄릿의 귀환을 기다리는 의 주인공들과 함께 폐공장을 무대로 벌이는 장면/해프닝들은 본래의 공연 이전과 이후, 그리고 속내를 드러내며 새롭게 변주될 예정이다. 손쉬운 타협을 선택하지 않고 세상과, 자신과의 싸움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친다면 매달 수요일 홍대 앞 클럽 '빵'에서는 개성 넘치는 음악 레이블이 동참하고 콜밴이 함께 하는 수요문화제가 열리고 있다는 점도 잊지 마시길.

이정민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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