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사학자 프레드릭 잭슨 터너는 1893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전미 역사학회에서 역사적 논문을 발표했다. 훗날 '프론티어 사관의 선언'이라 불리게 된 터너의 발표는 미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다. 프론티어와 서부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 논문은 애팔래치아 산맥 동쪽의 뉴잉글랜드지방, 곧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미국 동부의 뉴욕, 매사추세츠, 메릴랜드, 캐롤라이나, 버지니아, 조지아 등 이른바 독립 13개 주를 미국의 주류로 간주하던 미국의 역사관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터너는 미국의 정신은 동부가 아닌 서부에 있다는 혁명적 이론을 전개한 것이다. 서부는 정체된 동부지역 사회에서 벗어나려는 창조적 개척민들의 출구이자 신천지였고 그들의 진출에 따라 형성된 개척지와 미개척지의 경계를 의미하는 프론티어야말로 자유, 자치의 상징이었다고 역설하였다. 프론티어에 의해 생성된 독립정신, 자유에의 의지는 미국의 정신이 되었고 서부는 불만세력에 의한 사회의 폭발을 방지하는 안전판으로 기능했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프론티어 사관은 이후 미국을 넘어 유럽으로까지 확장되어, 구대륙 유럽의 사회적 불만에 의한 폭발을 예방하게 된 안전판이 신대륙 아메리카였다는 거대이론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한편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 서부로 간 사람들의 대다수가 범죄자, 알코올 중독자, 사회 부적응자 들이었고 개척자적 사명을 가진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자영농은 극소수였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따라 서부와 프론티어 신화는 다소 퇴색하기도 했지만, 미국인들이 서부에 갖는 애착과 환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자유를 갈구한 창조적 개척자에게나 부랑아들에게나 서부는 사회적 불만과 욕망의 출구 또는 도피처가 되었다는 점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추진한 아폴로계획은 서부와 프론티어에 대한 미국인들의 향수와 지지를 대변했다. 케네디는 미국 내에 국한되었던 프론티어를 우주로까지 확장시키는 아폴로계획을 뉴프론티어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시켜 미국인들의 자부심을 한껏 높였다. 한편 미국 최고의 인기스포츠인 미식축구는 서부 개척사의 스포츠적 변형이고, 총기사고가 속출해도 총기 소지를 금하지 못하는 것은 총기 회사의 막강한 로비 때문도 있지만, 가족의 안전은 자신이 지킨다는 개척민 정신 곧 서부 정신의 잔영이라는 분석이 더욱 설득력이 있다.
터너의 프론티어 사관을 장황하게 나열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중국 상하이를 무대로 한ㆍ중ㆍ 일 주먹들이 펼쳐내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가 인기라고 하니 예전 김두한을 주인공으로 한 자칭 협객들의 세계를 다룬 연속극의 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 대 1 대결에서 패한 건달이 다음날 새벽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만주행 열차를 타는 장면이 그것이다. 우리의 현실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이 만주와 상하이 등으로 어렵지 않게 펼쳐지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식민지 치하였지만 이 땅에서 뜻을 펴기 힘들면 기차를 잡아타고서 만주로, 배를 타면 상하이로 떠날 수 있었다. 특히 1930~40년대 만주야말로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를 연상시킬 만큼 일종의 '골드러시'가 일어서 많은 일본인과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주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안도현 시인은 '섬'에서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 눈 밝혀야 하리"라고 섬의 외로움과 이겨내야 할 현실을 서정적이지만 섬뜩하게 표현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은 삼면이 바다로 둘려싸여 있고 나머지 한 면은 대포와 총으로 막혀 있는 섬 같은 곳인데, 주변과 가까워지기보다 더욱 멀어져 섬처럼 고립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가 게임 등 사이버 세계에 그렇게 열광하고 빠져드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꽉꽉 막힌 지정학적 위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엄혹한 식민지 시절에도 기차 시간만 맞추면 훌쩍 떠날 수 있던 광활한 미개척지 만주 벌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꾸부정하게 모니터 앞에 앉아 퀭한 눈으로 가상세계에나 들락거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을 넘어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김상엽 건국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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