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을 맞으니 야권통합에 의료대란으로 세상을 들썩이는 일들이 연일 터져 나온다. 그런 와중에 정작 봄 햇살과 같이 따스한 움직임이 있어 눈길을 끈다. 노란봉투와 손잡고라 불리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12월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2009년 분규행위로 47억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명령이 떨어지자 그 막대한 손해배상액을 십시일반으로 해결해보자는 어느 시민의 제안이 온라인으로 퍼져 '노란봉투'란 이름으로 시민 모금이 전개되고 있다. 노란봉투 모금 운동은 유명 연예인의 동참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만, 손해배상 판결로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피맺힌 사연에 많은 시민이 공감하며 선뜻 후원의 손길을 보내주어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손잡고는 쌍용차에서나 지난해 12월 발생한 철도노조 파업에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 및 가압류가 청구되는 것을 지켜본 몇몇 교수가 앞장서 이 문제의 개선을 촉구하여 만들어진 범사회적 시민연대모임이다. 지난달 26일에 출범한 일명 "손배ㆍ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에는 노동계와 시민단체뿐 아니라 정치ㆍ문화ㆍ예술분야의 많은 사람이 호응하여 손배ㆍ가압류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노조 파업에 대해 사용자가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청구하는 것이 무슨 문제라고 노란봉투나 손잡고와 같은 시민 행동이 등장한 것일까? 그 답은 손배ㆍ가압류에 폭탄이라 표현이 덧붙일 만큼 너무나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헌법의 제33조 1항에는 단결권ㆍ단체교섭ㆍ단체행동권을 보장한다고 엄연히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1987년 이전에는 정부가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을 명분 삼아 노동조합의 결성과 단체행동을 철저히 통제하였기 때문에 자유롭게 노동삼권이 행사될 수 없었다. 민주화와 더불어 노동시민권이 보장되자 한동안 노조의 결성과 파업이 엄청난 기세로 확산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들이 새롭게 강구한 대응수단이 손배ㆍ가압류였다. 1990년대 초 문민정부는 노조의 분규행위를 억제하기 위해 기업들로 하여금 합법ㆍ불법 파업을 가리지 말고 노조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도록 적극 독려하였으며, 그때부터 노조 파업에 대한 기업들의 손배ㆍ가압류소송이 널리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기업의 손배ㆍ가압류소송은 점차 청구의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 대상이 파업참가 조합원까지 확대되면서 노조 파업을 억제하던 압력수단에서 노조 자체를 무력화하는 살상용 무기로 바뀌었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노조 파업이 공공질서에 손해 끼쳤다는 명분으로 화물연대와 쌍용차의 분규에 대해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당사자로 나서기까지 하였다. 최근 박근혜 정부에서는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무려 152억원의 손해배상과 116억원의 가압류를 청구하였다. 그 결과, 2014년 2월말 현재 민주노총 산하 노조와 소속 조합원들에게 청구된 손해배상과 가압류의 누적금액이 각각 1691억원과 182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수치에 달하고 있다. '손배 폭탄'은 노조의 정상적인 활동을 크게 위축시킬 뿐 아니라, 조합간부와 조합원들에게 경제적 압박을 안겨주어 가정파탄이나 심지어 자살에 이르게 하는 심각한 폐단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노동조합을 '손배 폭탄'으로 탄압하는 나라는 현재 선진국 중에서 찾아볼 수 없다.
경제 약자들이 뭉쳐 그들의 단체행동으로 권익 개선을 주장할 수 있도록 헌법에서 보장하는 노동기본권을 손해배상과 업무방해로 크게 제한하는 나라에서는 경제민주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만큼, 최근 많은 시민이 노조의 단체행동에 가해지는 무자비한 '손배 폭탄'의 폐해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 고통받는 노조를 도우려는 연대의 손길을 건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노동기본권을 훼손하는 '손배 폭탄'을 제대로 제거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합법적 파업을 '낙타의 바늘구멍 통과' 보다 어렵게 만들고 있는 현행 법령의 문제점을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노란봉투와 손잡고의 시민연대 행동이 '손배 폭탄'의 뇌관을 해체하는 제도개선을 이룰 때까지 날로 강대해지길 소망해본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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