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 파문으로 야권은 물론이고 새누리당에서도 문책론이 거론되는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민주화 이후 어느 국정원장보다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지난 1년간 여권에 불리한 절묘한 시점마다 민감한 현안을 터뜨리며 정국흐름을 바꿔 국정원이 주도하는 정치라는 뒷말을 낳을 정도였다. 이번 증거조작 건도 법이 요구하는 정치적 중립성에 충실하지 못하고, 정치적 영향을 미치려다 뒤탈이 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조작과 문서 위조가 불거진 뒤 계속된 국정원의 여론호도가 정보기관의 신뢰 위기감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상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박원순 시장 제압용'이란 시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수사ㆍ기소는 원세훈 전 원장 시절이었지만, 검찰이 조작된 증거를 제출한 재판은 남 원장 취임 후였다. 국정원이 오세훈 전 시장 재임 시절 채용된 유우성씨의 간첩행위 시점을 박 시장 재임기간인 2012년 7월로 특정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것이다.
취임 초 올곧은 군인으로 국정원의 정치 색채가 옅어질 거란 기대를 갖게 했던 남 원장이 정치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대표적 사례가 원 전 원장 기소 직후인 지난해 6월24일 전격 단행한 전대미문의 2007년 검색하기">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사건이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국정조사를 계기로 높아지던 국정원 개혁에 대한 여론이 이를 계기로 주춤해졌다. 특히 남 원장은 여권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주장이 매우 논란이 큰 사안임에도 "결과적으로 NLL을 포기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혀 정치의 중심에 섰다.
3년 동안 내사를 벌여오던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지난 8월28일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하고 공개수사로 전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된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 해명을 요구하며 종교계ㆍ학계의 시국선언과 시민들의 촛불 집회가 잇따르던 상황이 순식간에 진압됐다. 압수수색과 체포동의안 처리 등이 이어지면서 국정원도 개원 이래 최대 위기에서 벗어났다.
국정원이 위기 국면마다 '정치'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으나, 힘을 얻지 못했다. 종북 논란에 휩싸인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사건을 계기로 주도권이 여권으로 넘어오면서 국정원 개혁도 사실상 흐지부지 됐다는 평가다. 민주당은 정치적 의도가 담긴 공안정국 조성이라고 맞섰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을 비롯한 주요 이슈들은 모두 묻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남 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이 의도를 갖고 고비마다 대형사건을 터뜨렸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전후 맥락상 이를 부인하기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국정원이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과 정치 중립성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통제권을 제도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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