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던 일본의 구상을 12일 일축했다.
과거사 왜곡을 고집하는 일본측의 무성의로 한미일 3각 협력체제를 복원하려는 미국 정부의 노력이 일단 무산됐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4월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아직 시간이 남아있어 한일 양국이 얼마나 접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사이키 아키타라(齋木昭隆)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이날 외교부 청사에서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을 만나 "양국 정상이 이른 시기에 조건 없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대화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이키 차관은 이달 말 핵안보회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한국과의 정상회담을 공개적으로 희망해 온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며 우리측을 압박했다.
사이키 차관은 고노 담화와 관련, "아베 내각은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을 계승하고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일본 정부는 당초 위안부 문제를 사과한 고노 담화를 검증하겠다고 밝혔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지난 10일 "재검토는 없다"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
이에 조 차관은 "일본이 위안부를 포함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하며 우리 정부의 강경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또한 아베 내각의 역사수정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조 차관은 이날 면담 전 "성과 있는 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 대통령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면서 "그런 믿음이 설 때 (정상회담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앞서 일본측은 자국 언론을 통해 "미일 양국이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열자고 한국에 제안했다"며 우리 정부를 몰아세웠다. 일본의 한미일 정상회담 제안은 이처럼 '이중 플레이' 외교 성격이 짙어 한미일 3각 공조가 더 꼬이게 됐다. 한일 갈등도 오히려 증폭되는 모습이다.
미국도 타격을 입게 됐다. 존 케리 국무부 장관이 직접 나서 한일관계 복원을 주문했으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꼼수'행보로 한미일 3각 공조 회복이 그만큼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은 3국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 미국과 사전에 제대로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가 '한미일 정상회담'를 사실상 거부한 것은 일본의 자세에 관계개선의 적극적 의지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 아베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명분을 우리측에 전혀 주지 않으면서 정상회담만 고집하는 아마추어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1년 동안 일본의 책임 있는 역사인식과 자세를 줄기차게 강조해온 박근혜 대통령이 고노 담화 재검증 등 퇴행적 행태를 보이는 아베 총리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악수를 하기는 국내 정치적으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면 아베 정부는 핵심 지지층인 우익세력에 맞춰 한국이 피해자로 기록된 과거는 부정하면서 미국에는 '한국이 과거에 집착한다'는 식으로 우리측에 책임을 넘기는 행태를 보여왔다. 아베 총리의 친미 성향과 맞물려 집권 초기에는 미국 조야에서 설득력을 얻었으나, '자충수'로 평가되는 지난해 말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이후 미국에서도 기류가 변했다. 미국 의회조사국은 최근 펴낸 미일 관계 보고서에서 "일본 총리 참배 이후 한일 관계 경색의 원인은 일본에 있다는 게 미국의 정서"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도 공식석상에서는 한일관계 개선을 양측에 권고하고 있지만 섣불리 적극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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