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석유거래의 중심지인 세계 3대 오일허브로는 ▦미국 걸프만 연안 ▦유럽의 ARA(벨기에의 앤트워프,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및 암스테르담) 지역 ▦싱가포르 등이 꼽힌다.
최근 그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곤 하지만, 석유는 여전히 전 세계 1차 에너지원 가운데 38%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 '넘버 원' 에너지. 때문에 석유거래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 규모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는데, 싱가포르는 국내총생산(GDP)의 11.5%, ARA지역도 네덜란드 GDP의 7.3% 수준에 달한다.
이런 점에 주목, 한국도 2008년부터 '동북아 오일허브' 구축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동북아지역의 석유물동량 급등과 함께 싱가포르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새로운 오일허브에 대한 수요가 커졌는데, 지정학적 위치나 석유 정제능력 등으로 볼 때 우리나라가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는 평가였다. 중국은 항만 수심이 낮아 대형유조선 정박이 어려운 데다 정제능력이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고, 일본은 항만물류비가 비싸고 지진 등 자연재해에 취약한 치명적 단점을 갖고 있어, '오일허브'의 경쟁력은 우리나라가 훨씬 뛰어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만약 우리나라가 오일허브가 된다면, 전 세계 유조선들이 수없이 우리나라를 오가고 천문학적 규모의 석유 현ㆍ선물거래가 이뤄지게 된다.
그로부터 6년 뒤, 정부가 드디어 이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내놓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2일 제5차 무역투자진흥회의 및 지역발전위원회 연석회의에서 동북아오일허브 추진대책을 확정 발표했다.
우선 오일허브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충분한 저장시설. 정부는 이미 추진 중인 3,660만배럴 규모의 탱크터미널(석유 저장시설) 건설을 2020년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 중 지난해 6월 여수지역에 820만배럴 규모의 탱크터미널이 완공돼 올해 3월부터 상업운전이 시작됐으며 울산 북항에 990만배럴 규모 저장시설과 항만접안시설이 2016년까지 들어선다. 울산 남항에는 원유 1,850만배럴 규모의 석유물류 인프라가 2020년까지 구축된다. 여기에다 정부비축시설(2,000만배럴)을 민간에 대여하면 전제 저장규모도 5,660만배럴로 확대돼 싱가포르(5,220만배럴)를 넘어선다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허브가 되려면 저장시설 외에 실질적 거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정부는 해외 석유트레이더의 투자 유치를 위해 이들이 국내에 법인을 설립할 때 첫 5년간은 법인세를 면제해 주고, 이후 2년간은 50% 감면해 주기로 했다. 또, 원유 수입 시 관세와 수입부과금을 징수한 뒤 석유제품을 정제해 수출할 때 해당 세금을 돌려줬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원유 수입 때는 세금을 징수하지 않고 원유를 정제한 뒤 내수용으로 사용되는 석유제품에 대해서만 관세ㆍ수입부과금ㆍ유류세 등을 일괄 징수키로 했다. 복잡한 절차를 단순화함으로써 1조4,000억원의 행정ㆍ금융비용도 절감될 전망이다.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에 정제업ㆍ수출입업ㆍ판매업 외에 '석유트레이딩업' 관련 규정도 신설, 그 동안 해외 트레이더 유치를 가로막았던 장벽을 허물었다. 지금은 별도 규정이 없어 이 사업을 하려면 석유수출입업 등록을 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아울러 석유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석유류ㆍ파생상품 트레이딩 사업에 대해선 외국환거래 신고의무를 완화하는 금융지원 방안도 담겼다.
정부는 이 같은 오일허브가 구축되면 경제파급 효과가 단기적으로 3조6,000억원, 장기적으로는 6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연 250억달러 이상의 석유제품 수출 증대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 이번 프로젝트에 대한 우려도 있다. 지난 2009년 국정감사에서 우제창 당시 민주당 의원은 "미국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30년 세계 석유소비량은 7%까지 줄어든다. 이 사업의 전제인 석유시장 규모가 과대 포장됐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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