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야말로 민주주의의 뿌리다. 그러나 지금 자치는 위기상태다. 재정도 자율성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지난해 지방자치의 날에 앞서 김문수 경기지사가 올린 트위터 글)
1995년 자치단체장 선출로 본격 도입된 민선 지방자치제도가 올해로 20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은 고사하고 돈도, 권한도 모두 중앙정부에 휘둘리는 '예속자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먼저 지방분권 실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열악한 재정이 꼽힌다. 자치단체의 자주재원인 지방세 비중을 보면 국세 79% 대 지방세 21%로, 8대 2 비율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중앙정부 사업에 돈을 대느라 사실상 지자체가 쓸 수 있는 예산은 5% 밖에 안 된다. 이 돈으로는 지자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일본(57:43), 미국(56:44), 독일(50:50) 등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재정 불균형이 심각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민선 5기(2010-2014)가 들어선 첫 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재정조기 집행 등으로 재정지출 확대가 불가피했고 4대강 사업 등 대형 국책 사업 시행에 따라 지방재정 요구가 커 넉넉지 않은 상태로 출발했다. 이에 더해 정부가 확대된 복지사업 비용을 지방정부에 떠넘기면서 재정부담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지난해 무상보육 국비 보조율을 둘러싼 서울시와 정부의 갈등에서 보듯, 복지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증가될수록 사회보장 비용 분담을 둘러싼 정부와 지자체 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자체들 사이에서는 "곳간을 지키는 게 가장 큰 업무가 됐다"는 자조마저 나오고 있다. 실제 민선 5기에선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자치제도 개선과 같은 고민보다는 지방재정 확충을 위한 활동이 주를 이뤘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서도 영유아 무상보육사업 국비보조율을 50%에서 65%로 높여 지자체의 세출 부담을 덜어 낸 것이 나름 큰 성과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내걸었던 '0~5세 무상보육'공약을 지키겠다며 지난해 3월부터 전면 추진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박 대통령은 당초 무상보육의 국가 책임을 위해 안정적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막상 정책 시행을 앞두고는 부담을 지자체 몫으로 떠넘기면서 지자체와 정부의 갈등이 시작됐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은 기존 국고보조율(20%(서울), 50%)에서 각각 20% 인상을 요구했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이 10% 인상으로 선을 그으면서 양측의 줄다리기가 계속됐다.
20% 인상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로 구성된 전국시도지사협의회 등은 지난 한해 국무총리와 정당 대표들을 잇따라 방문해 국비 증액을 요청하러 쫓아다니는 게 주요 업무였다. 결국 올해 예산부터 영유아 무상보육사업의 국비보조율이 15%로 절충됐지만, 여전히 각 지자체별로 수백억원에 달하는 예산 결손이 불가피해 지자체들의 반발은 올해도 이어질 전망이다. 시장 군수 구청장들의 연구모임인 목민관클럽은 기초노령연금, 영유아보육비 지원 등 국민기초생활보장관련 사업을 전액 국고지원으로 전환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오고 있다.
지방세인 취득세 인하조치에 따른 감소분을 보전 받은 것도 지방재정을 지켜낸 성과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해 8월 부동산 시장 활성화 조치로 취득세를 영구 인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지방정부와의 전선이 또 다시 형성됐다. 지방정부는 정부의 일방적인 취득세율 인하는 지방자치 정신을 훼손하고 지방재정을 파탄 낼 수 있다며 반발해왔고, 결국 국회는 올해 예산안을 책정하며 국세인 부가가치세의 6%를 지방소비세로 이양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이뤄냈다. 그러나 전국시도지사협의회 김홍환 선임연구원은 "지방재정부담 완화를 위한 조치였기에 실질적으로 지방재정이 확충됐다거나 자율성을 높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앙정부의 일방적 행보에 지방정부가 휘둘리는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지방재정의 자주권을 지키려는 노력이 뒤따르고 있다. 중앙정부에서 지방재정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할 때 지자체 의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도록 지방재정심의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한 것이다. 심의위는 당초 안전행정부 산하에 있었지만 돈줄을 쥐고 있는 기재부와의 갈등을 조정하지 못해 유명무실하게 운영된 측면이 있었다. 이에 지난해 6월 법을 개정해 총리실 산하에 재정심의위를 설치하고 시군구단체장협의회 등 지자체를 대표하는 4개 협의회 대표가 의견을 전달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 밖에도 지방에 행ㆍ재정 부담을 수반하는 법령 개정 시 지방의견을 반영토록 하는 법제업무운영개정을 했지만 여전히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연방제 국가수준은 아니더라도 사무권 재정권 독립이 뒷받침돼야만 지방자치 실현이 가능해진다"며 "지방자치 기반이 없다 보니 지방선거 역시 중앙선거 대리전으로 치러지면서 중앙정부 예속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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