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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3월 13일] 다시 읽는 김남주의 시

입력
2014.03.1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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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의 시집을 처음 읽은 때가 1980년대 말이었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김남주의 시는 다른 시들과 많이 달랐다. 질곡과 혼돈의 한국 현대사에서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시가 적지 않지만 그 가운데서도 김남주의 시는 너무나 강렬했다.

'조국은 하나다'로 시작하는 '조국은 하나다'나, '오월 어느 날이었다'로 시작하는 '학살'에서는 비장함이 느껴졌다. 혁명가의 품성과 목숨을 건 투쟁 의지를 드러낸 '전사'는 해방전사가 되겠다는 시인의 공개 선언으로 들렸고 '종과 주인'에서는 섬뜩함이 보였다. 그때까지 읽은 김남주의 시 대부분에는 남북분단과 계급갈등을 해소하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김남주는 시를 510편 정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 360여편은 옥중에서 쓴 것이다. 그는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1979년부터 1988년까지 10년 가까이를 감옥에서 보냈다. 세상과 격리된 그곳에서 그는 필기구와 종이가 없어 못으로 우윳갑이나 담뱃갑 은박지에 시를 새겼다. 그것을 면회 온 사람을 통해 밖으로 보내 시집으로 냈다. 문단은 그의 옥중시가 세계 문학사에 유례가 없다고 평가한다.

김남주의 시가 두드러진 것은 시가 주는 충격 말고도 막힌 공간에서 시를 쓰고자 했던 고투가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김남주 스스로도 "연필 한 토막, 종이 한 쪼가리 주지 않는 야만적이고 절박한 상황을 만들어주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죽자 살자 하고 시 같은 것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는 그래서 "만약 감옥생활을 겪지 않았더라면 김남주는 시인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물론 김남주의 시에 비판도 많다. 상투적이고 관념적이며 과격하다는 지적이 있다. 시를 해방투쟁의 종속물로 여기는 그의 태도 또한 논란을 낳았다.

옥중시의 절정을 보여준 김남주는 그러나 마흔 아홉의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형 집행정지로 석방돼 결혼도 하고 자유를 누린 지 5년 남짓 만에 병고로 숨을 거둔 것이다. "대중과 더불어 생활하고 사고하여 구체성을 갖는 시를 쓰겠다"고 했지만 그에게는 그럴만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황지우 시인의 전언에 따르면 그가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은 "개 같은 세상 개같이 살다 개같이 간다"였다. 회한이 남지 않을 수 없는 나이였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만약 그가 그 나이에 죽지 않고 이제껏 살아있었다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일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대한민국 최초의 수평적 정권 교체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과, 한일월드컵 당시 거리로 쏟아진 인파의 함성을 어떻게 평가했을지도 알고 싶다.

올해는 김남주가 숨진 지 20년 되는 해다. 김남주의 문학세계를 돌아보고 평가하는 행사가 많다. 그의 문학을 살피는 심포지엄이 이미 열렸고 추모제와 추모문화제는 올해 안에 열린다. 출판사 창비는 과 평론모음집 를 냈다. 그 책들을 들쳐보니 일상의 언어로 명료하게 전하는 김남주의 시가 여전하다.

김남주의 시는 지금 읽어도 비장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의 독자가 김남주의 시에 얼마나 공감할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시를 애송하고 그의 삶을 추종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많이 변했다. 전세계가 그토록 매달렸던 체제 경쟁에 큰 의미가 없어졌고 인터넷과 모바일이 지구인의 생각과 행동을 새롭게 만든다. 물론 미국의 영향력과, 자본의 탐욕과, 남북한의 대결구도는 여전하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판단할 수는 없는 시대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김남주의 순결한 정신을 훼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와 삶을 철저하게 하나로 하고 스스로 설정한 인간상에 도달하고자 자신을 채찍질하고 단련한 그의 삶은 시대를 넘어, 이념적 잣대를 초월해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김남주 20주기가, 이상을 향해 나아가려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박광희 문화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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