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에 베를린과 파리를 다녀왔다. 도시의 첫인상은 건축 스타일에 크게 기대기 마련인데, 내게 베를린은 거칠고 투박한 호밀 빵 같았다. 그리스 신전의 도리스 양식과 아치와 돔으로 대표되는 실용적인 로마 건축양식, 권위적인 공산주의식 건물, 패턴과 직선의 현대적인 디자인이 혼합하여 빚어내는 베를린의 도심 풍경은, 파리의 정돈된 장식성에 익숙한 내게 꽤나 혼잡하고 촌스럽게 다가왔다. 하지만 여러 날을 지내다 보니, 그 촌스러움은 장식이 배제된 단순함과 꾸미지 않은 소박함으로 느껴졌다. 위압적인 직선의 각진 높은 건축물도 한 발 물러서 보면 그 호방함에 파리의 오밀조밀함을 벗어난 듯 속이 탁 트였다. 이외에도 곳곳에 베를린만의 매력이 가득했다.
건물보다 사람이 먼저다
건축이 도시의 풍경을 결정짓는다면, 도시의 매력은 그 도시를 사는 사람들이 만든다. 지난 해에 미술관과 음악당을 갔던 터라, 이번 여행에는 카메라를 들고 베를리너(베를린시민)들의 삶의 다양한 공간들도 찾아 다녔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템펠호프 공항터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도서관과 문화센터가 들어설 예정인데, 지금은 시민들에게 공원으로 개방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조깅을 하고, 개와 산책을 하고, 잔디밭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삼삼오오 요가를 하고, 모형 비행기를 날리며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도시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고, 시민들은 그곳에서 각자 일상의 작지만 확실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었다. 서울 시민으로서, 부러웠다. 2014년 가을ㆍ겨울 패션위크가 열리는 2월말의 파리는 전세계에서 모여든 패션 피플들로 들썩였다. 베를리너들이 베를린을 매력적으로 만들 듯, 파리의 매력도 파리지앵(파리시민)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들 각자는 참 불친절하지만, 그들이 모여서 만든 파리는 참 매력적이었다. 잠시 머무는 여행객이 파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줄 수는 없다. 파리와 베를린의 아름다움은, 결국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개발하고 가꾸어온 것이었다. 그것을 경험하고자 전세계로부터 수많은 여행객들이 모여들었다. 자신이 살아가는 도시를 아름답게 가꾸고 지켜나가는 마음은, 그 도시에 대한 강한 소속감과 사랑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시장과 시청은 그것을 행정과 정책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서울의 매력을 만들어가자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며 생각해봤다. 서울은 세계인들에게 매력적인 도시일까? 서울은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박원순 서울 시장의 시민이 시장이라는 구호는, 서울 시민이 서울의 주인이라는 말로 들린다. 결국 서울 시민이 서울을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과도 연결된다. 그래서 미래를 위한 재건축과 개발도 필요하지만, 서울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을 위한 투자도 아주 중요하다. 결국 그들이 서울을 매력적인 도시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 때마다 내세우는 거창한 구호와 공약은 중요하지 않다. 선거와 선거 사이에, 그것을 얼마나 충실하게 실행해나가는지가 중요하다. 말은 쉽고, 행동은 어렵다. 약속하기는 간단하지만, 그 약속을 실천하기는 웬만한 의지와 실행력으로는 힘들다. 그래서 선거 공약을 지키는 정치인은 참 드물다. 박원순 시장의 지난 2년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나는 박시장의 소소하고 섬세한 몇몇 정책들을 높게 평가한다. 특히 심야 전용 '올빼미 버스' 운행과 여성 안심 귀가 서비스 및 국공립 어린이 집 확대 같은 정책들로 시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서울 생활의 만족도는 높아졌다. 정치와 행정은, 동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부족하고 필요한 것들을 해결할 때 가치 있다. 서울 시민이 서울을 아끼고 사랑할 때, 서울은 치열한 생존의 도시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생활의 도시로 거듭 날 것이다.
지금 서울 곳곳에는 한류 열풍에 힘입어 외국인들로 가득하다. 한류 콘텐츠를 통해 갖게 된 이미지에 매혹되어 서울을 찾고 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서울만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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