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기를 조작해 정해진 양보다 기름을 적게 넣는 수법으로 수십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업자들이 적발됐다. 주유기 프로그램을 변조해 겉으로 봐서는 이상한 점이 드러나지 않고 석유관리원의 눈을 피해기 위해 일정량 이상일 때만 주유량이 줄게 하는 등 지능적 수법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주유기 표시량보다 기름이 3~5% 적게 들어가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유소에 판 혐의(사기 등)로 프로그램 제작자 김모(59)씨와 판매자 구모(53ㆍ주유기 수리업자)씨, 이들에게 구입한 프로그램을 사용한 주유소 대표 2명 등 5명을 구속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은 프로그램 중간유통책 4명과 서울 인천 경기 충청 등 18개 주유소 대표 등 3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판매책들은 지난해 3월 김씨에게 2,000만원을 주고 신종 조작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구씨 등은 이렇게 만든 프로그램을 주유소 20곳에 설치해주는 대가로 주유기 1대당 200만~300만원을 받아 1억6,000여만원을 챙겼다.
조사 결과 주유기 조작으로 20억원을 챙긴 의정부시 H주유소 대표 임모(43ㆍ구속)씨 등 주유소 대표 26명은 지난 8개월간 모두 82억4,000여만원의 부당 이득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차량당 60ℓ를 주유한다고 가정하면 274만여대 차량이 2ℓ씩 손해를 본 셈이다. 이는 서울시 등록차량 대수(올 1월 기준 298만대)와 맞먹는다.
이들은 지능적 수법을 동원해 한국석유관리원 등의 단속을 피했다. 주유기 메인보드에 메모리칩을 달면 보기만 해도 알아챌 수 있기 때문에 휴대폰 크기의 이식기를 주유기 메인보드 단자에 연결해 7초 만에 변조 프로그램을 이식시켰다.
또 석유관리원 등이 주유량을 측정할 때 20ℓ를 기준으로 하는 것에 착안, 최초 20ℓ까지는 정량을 넣다가 20ℓ를 넘어가면서 기름이 덜 들어가게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주유기에 금액을 입력하면서 끝에 정해진 숫자를 누를 때만 작동하도록 만들어졌다.
경찰은 비슷한 사례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석유관리원과 함께 단속을 확대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기름값이 지나치게 싸거나 주유기 금액 자판에 필요 이상 많은 숫자를 누른다고 의심될 때는 즉각 경찰이나 석유관리원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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