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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3월 13일] 시인의 자부심

입력
2014.03.1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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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주로 시인들과 어울린다. 그들과 술도 먹고 밥도 먹는다. 그들과 어울리다 운이 좋은 경우라면 그들이 쓰는 시의 개성적인 내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보일 때도 있다. 다양한 취향과 기질을 가진 시인들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자신이 쓰는 시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남에게 지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아주 온순한 인품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시인이라도 자신의 시가 왜곡된 평가를 받으면 일순간 열혈 투사로 변신하는 경우를 나는 심심찮게 목격했다. 자부심을 표현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어떤 시인은 침을 튀기며 자신이 왜 좋은 시인인지를 말하기도 하고, 어떤 시인은 아주 관조적이고 초월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은근한 방식으로 남다른 자부심의 품격을 드러내기도 한다. 내가 만나본 시인 중에 시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장 소박하게, 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게 드러낸 분은 시인 황인숙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당신이 쓴 어떤 산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시로 쓰지 못한 좋은 것을 갖고 있지 않다." 이 말은 당신이 가진 좋은 것은 모두 시로 썼다는 의미이겠다. 시인으로서 이토록 정갈하고 맑고 깊은 자부가 어디에 있을까. 남산 밑 옥탑방에서 물직적 풍요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계시지만, 선생님은 시인으로서 이미, 아니 자연이 만들어진 처음부터 풍요롭게 존재하고 계신 셈이다. 선생님을 너무 오랫동안 못 뵈었다. 문득 선생님이 많이 뵙고 싶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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