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제1 목표는 물가 안정정부와 함께 성장만 외친다면 한국경제 브레이크 기능 상실저물가 시대에 맞게 변해야소비자 물가 16개월째 1%대… 성장 통한 일자리 창출 더 중요이분법적 사고 벗어나야물가 안정 이루면 경제도 안정… 결국 경제 활성화로 통할 것
물가 안정? 금융 안정? 경제 안정? 경제 활성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역할을 두고 요즘 논란이 한창이다. 오는 19일 한은 역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이주열 총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개인 신상 보다는 정책 검증 위주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은행법 제1조 1항이 명시하고 있는 한국은행 설립 목표는 물가안정. 글로벌 금융위기가 지나간 2011년 금융안정 기능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한은이 설립된 1950년 이후 물가안정은 줄곧 한은의 제1 목표였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우리 경제의 큰 틀이 고성장ㆍ고물가에서 저성장ㆍ저물가 구조로 바뀌는 중이고, 특히 최근 들어 저물가 및 경기부진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는 추세다. 12일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2년 11월 이후 벌써 16개월째 1%대에 머물고 있다. 반면 체감경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경기전망조사에서 중소기업인 경영애로사항 1위는 22개월째 내수부진이 차지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한국은행이 지나치게 물가안정에만 집착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온 이들은 이 참에 아예 한은이 경제 활성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경제전문가 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공개했는데, 차기 한은 총재의 중점 과제로 10명 중 6명(59.1%)이 '경제 활성화'를 꼽았다. '물가 안정'을 꼽은 비율은 31.8%에 그쳤다. 재계의 시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결과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장관 역시 한 강연에서 "최근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사명이 많이 바뀌었다"며 "물가를 잡고 경제를 안정시키는 것보다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더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정부와 마찬가지로 경제 활성화를 기치로 내건다면 우리 경제가 브레이크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반론이 비등하다.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김대식 중앙대 명예교수는 "경제활성화 운운하는데 현재의 2.5% 기준금리가 경제 회복을 억누를 만큼 높은 수준이란 말이냐"며 "한 나라에서 중앙은행이 물가를 책임지지 않으면 누가 책임지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렇다 해도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한은이 물가안정만을 외쳐서는 운신의 폭이 매우 좁을 수밖에 없다. 이 총재 후보자 역시 "지금은 통화정책을 펴기가 상당히 힘든 상황"이라는 말을 종종 해왔다. 그래서 한은이 '인플레이션 파이터'가 아니라 '디플레이션 치유자'로 역할을 수정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 불안정을 초래하는 것 없이 물가 하락을 방어하는 역할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지적했다.
물가 안정이냐 경제 활성화냐, 혹은 물가 안정이냐 금융 안정이냐 식의 이분법적 논란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많다. 전 금통위원인 최도성 한동대 국제화부총장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금융 안정이나 경제 안정을 무시하고 물가 안정에만 매달려온 적은 없다"고 말했다.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물가 안정을 이루면 경제도 금융시스템도 안정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경제 활성화도 되는 것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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