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질서
저기 나란히 '파킹'되어 있는 건, 이름을 끄집어내 불러야 한다면 거북선이 맞을 것이다. 전기발광 여의주를 하나씩 문.
16세기 적과 아군의 살점이 미역처럼 뒤엉긴 피의 바다를 전진하던 조선의 최전방 돌격 함대는 일자진을 이루어 관광지가 된 삼도수군통제영의 내만을 지키고 있었다. 위수지역은 좌로 평일 기준 대실 2만5,000원, 숙박 4만원의 균일가가 적용되는 모텔촌 입구부터 우로 멍게에서 뽑은 식이섬유로 풀빵을 찍어내는 가게가 있는 중앙시장 골목까지.
역사를 다루는 키치적 발상의 옹색함을 헤집자는 게 아니다. 다만 저 통영의 밤에, 여의주를 헤드라이트처럼 밝힌 거북선들이 내겐 비현실적일 만큼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아마도 '질서'일 것이다. 지나간 세월, 가장 웅혼했을 전승의 기억마저 아무렇지 않게 셀카를 찍는 어린 학생들의 아이폰 화면 속 싸구려 배경으로 만들 수 있는 어떤 검질김. 그것이 조선의 맥을 이은 이 21세기 공화국엔 넘실거리고 있는 것일 텐데, 우리가 그것을 지칭하는 이름이 질서일 것이다. 정형(定型), 계량과 치환 가능성, 당부당의 일원론적 구분 따위에 대한 믿음, 그리고 따름.
그러한 질서가 밀려왔다 쓸려나가는 시간의 조간대가 현대일 텐데, 근자 들어 유독 이 공화국에선 그 질서가 훨씬 강고해지고 있는 듯하니, 통제사의 저 돌격선들은 내게 과거의 키치가 아니라 현재의 은유로 육박해 왔던 듯하다. 각을 맞춰 가지런히 정박해서 똑같은 요금표를 달고 있는 거북선들이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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