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이 주주총회에서 영향력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액과 지분은 확대됐지만 대주주의 장벽을 넘지 못해 경영진의 전횡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선진국의 연기금이 대기업의 횡포를 막는 ‘첨병’ 역할을 하는 것과 달리 국민연금은 ‘식물주주’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는 30대 그룹 183개 상장사의 국민연금 투자현황을 조사한 결과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수는 87개사(지난달 말 기준)였다고 12일 밝혔다. 10%룰이 해제되기 전인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평균 지분율을 7.45%에서 7.98%로 0.53%p 높아졌다. 투자 지분가치 또한 48조6,000억원에서 51조2,400억원으로, 2조6,000억원(5.4%) 이상 증가했다.
10%룰이 해제된 이후 국민연금의 투자 지분율이 10%를 초과한 기업도 17개사에 이르렀다. ‘10%룰’이란 국민연금의 투자 지분율이 10%를 초과할 경우 단 1주를 매매해도 5일 이내에 즉시 공시하도록 한 규정이다. 국민연금의 투자 족쇄로 작용했으나 지난해 8월 전격 해제됐다.
국민연금 투자 지분율이 가장 높은 기업은 12.74%를 보유한 LG상사였다. 이어 삼성물산(12.71%), CJ제일제당(12.69%), SKC(12.53%), 제일모직(11.63%), LS(11.39%), LG하우시스(11.34%), 롯데푸드(11.32%), LG이노텍(11.22%), 현대건설(11.17%) 순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대주주일가 및 우호지분은 37.01%로 국민연금 지분의 4.6배에 달하는 게 문제였다.
국민연금이 9.2%의 지분을 갖고 있는 롯데하이마트의 경우 대주주일가 및 계열사 우호지분이 65.3%에 달해 7배나 많았으며, 국민연금이 10.1%의 지분을 갖고 있는 신세계인터내셔날도 대주주 우호지분이 68.2%로 6.8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대상 가운데 국민연금 지분과 대주주 우호지분 격차가 가장 적은 기업은 제일모직이었다. 제일모직의 국민연금 지분율은 11.6%, 대주주 12.2%로 격차가 0.6%p에 그쳤다. 삼성물산도 국민연금 12.7%, 대주주 13.8%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어 격차가 1.1%p에 불과했다.
국민연금은 10%룰 해제 이후 반년 새 투자지분을 크게 늘리며 일부 투자기업에서는 총수에 버금가거나 뛰어넘는 지분을 확보했다. 문제는 대주주 일가가 순환출자를 통한 계열사 지분과 특수관계인 등 보이지 않는 우호지분을 확보하고 있어 표 대결을 벌일 경우 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점이다.
5% 이상 지분을 확보한 87곳 중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인 회사는 8곳, 2대 주주인 회사는 38곳 등 합쳐 46개 업체나 됐다. 그러나 대주주 일가 및 특수 관계인들의 우호지분을 넘어서는 경우는 1곳도 없었다. 이 때문에 횡령, 배임 등 비리 경영진의 퇴진은 물론 대주주의 전횡조차 견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CEO스코어 관계자는 “북미,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연기금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주주가치 훼손을 용납하지 않는 데 반해 국민연금은 수십조 원의 국민 자본을 들여 대주주 일가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하면서도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진우기자
한국스포츠 박진우기자 jwpark@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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