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고인민회의 제13기 대의원 명단을 선거 하루 뒤인 10일 발표했다. 북한 중앙선거위원회는 이날 "전체 선거자의 99.97%가 선거에 참가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후보자에게 100% 찬성투표했다"며 687명의 당선자 명단을 공개했다. 대의원 수는 1990년 제9기 대의원 선거 이래 동일했으며, 투표율도 2009년 12기 선거(99.98%)와 비슷했다. 교체율은 55%(376명)로 12기(45%)보다 다소 늘었다.
이번 선거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집권 후 처음으로 실시된 전국 단위 선거여서 관심을 모았지만, 예상과 달리 북한의 권력 지형도를 크게 흔들지 않았다.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숙청 이후 신 실세로 떠오른 노동당과 군부의 김정은 측근 그룹은 대의원 명단에 대거 이름을 올렸고, 김정일 시대를 일군 원로그룹과 장성택 인맥으로 분류된 인사들도 대부분 뽑혀 건재를 과시했다. 정부 당국자는 "장성택 숙청 후 체제 안착을 위해 변화와 안정을 동시에 도모해야 하는 김정은 정권의 고민이 묻어난 인선"이라고 평가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김정은 체제 공고화에 기여한 소장파 당ㆍ군부 인사들의 약진이다. 당쪽에선 조연준ㆍ최휘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황병서ㆍ박태성 부부장, 마원춘 당 재정경리부 부부장이, 군부에선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서홍찬 제1부부장, 김수길 군 총정치국 부국장, 박정천 포병사령관, 리병철 항공ㆍ반항공군사령부 사령관, 김명식 해군사령관 등이 새로 대의원에 선출됐다. 조연준 황병서 박태성 마원춘은 당 행정부로 대표되는 장성택 사단의 몰락에 주도적 역할을 한 조직지도부 핵심 인사들이다. 장성택 숙청의 쌍두마차인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도 예상대로 대의원 타이틀을 유지했다.
북한 권력엘리트의 분배 원칙인 '노ㆍ장ㆍ청 3합 구조'는 이번에도 재연됐다. 당초 실무능력을 중시하는 김정은의 인사 특성상 80대 이상 고령 지도부의 용퇴가 점쳐졌으나 김영남(86)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비롯, 양형섭(89) 부위원장, 김정일의 숙부 김영주(94)ㆍ최영림(84) 명예부위원장, 리을설(93) 군 원수 등이 대부분 자리를 지켰다.
장성택 숙청 여파도 미미했다. 측근으로 알려진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과 로두철 내각 부총리,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 박명철 전 체육상 등이 모두 살아 남았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해임설이 나도는 문경덕 평양시 당 책임비서를 제외하곤 장성택 숙청의 후폭풍이 예상외로 크지 않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개선과 경제재건을 강조한 김정은의 의지를 반영하듯, 대남ㆍ경제부문 인사들도 득세했다. 지난달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북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원동연 당 통전부 부부장과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이 새로 대의원 그룹에 편입됐고, 북한 경제사령탑인 박봉주 내각 총리도 무난히 당선됐다. 대북 소식통은 "내달 초 열릴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도 대남ㆍ경제 분야는 정책 변화 없이 전문 관료에 힘을 실어주는 조치가 단행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