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여대생 사망 사건의 범인을 잡아 보람을 느꼈다는 박근혜 대통령 신년사를 듣고 억장이 무너졌어요. 불과 8개월 전 죽은 우리 애들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우리는 청와대 앞마당에서 석 달 넘게 1인 시위를 하고 있는데…."
지난해 7월 충남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에서 목숨을 잃은 공주사대부고 고 이준형(당시 18세) 학생의 어머니 문광숙(47)씨는 아직 투쟁 중이다. 당시 사고에 대해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던 교육부는 유가족과 합의된 내용을 이행하지 않고 있고, 숨진 학생들의 의사자 지정 등 후속조치도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씨 등 유가족들은 지난해 12월3일부터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시위는 12일로 100일을 맞는다.
11일 청와대 앞에서 만난 문씨는 "유족과 합의서를 작성할 때 교육부의 위임을 받은 서남철 공주대 총장이 '공무원 신분으로 합의금을 적을 수는 없다'고 해서 합의서 별지에 공주사대부고 총동창회장이 자필로 위로금 4억원을 지급한다고 썼다"며 "그런데 교육부는 총동창회장이 작성한 별지는 법적 의무가 없다며 2억원만 지급하겠다고 잡아떼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장례식 날 경황이 없을 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합의서를 작성해 유족들을 기만한 것을 참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진석 교육부 학생복지정책관은 "서명이 없는 별지는 효력이 없고, 합의서에는 '법이 정하는 최대한 수준으로 보상'이라고만 써 있다"며 "유족들에게 위로금을 얼마 지급해야 한다는 특별 조문도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합의서 작성 후 돌변한 교육 당국의 태도에 아들을 잃은 문씨는 다시 한 번 상처를 입었다. 그는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정규 교육과정 중 변을 당했는데 책임기관인 학교는 물론이고 교육부도 관리감독 소홀 책임을 지지 않아 억울하고 분통하다"고 말했다.
당시 사고로 숨진 학생 5명을 의사자로 지정하는 문제도 부모들을 답답하게 했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 의사상자 심사위원회는 이들 5명이 위험에 빠진 다른 학생들을 구조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심의를 보류했다. 문씨는 "당시 사고현장에 있던 준형이 친구 3명이 직접 본 것인데 왜 증거가 부족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의협심과 책임감이 강했던 아들 준형이가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사라진 후 문씨는 직장을 그만뒀고, 휴직했다가 복직한 남편은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져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사고 후 준형이 이름에 먹칠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마음 먹었지만 이제는 악만 남아 피폐해지고 정부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만 남았다"는 문씨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문씨는 태안 참사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같은 대형사고가 또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사고 때 담당 공무원들이 제대로 징계를 받는 등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면 부산외대 학생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문씨는 강조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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