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달(66) 우포따오기식품 사장은 경남 창녕에서 순대제조업체를 운영한다. 지난 2009년 50억여 원을 들여 사업을 시작했지만, 2년만인 2011년 대기업들이 순대시장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 사장은 "대기업들이 순대까지 만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그 해 9월 동반성장위원회(동반위)가 순대업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장 사장은 지난 3년간 마음 놓고 사업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든든한 보호막이 생기니까 좀 더 품질에 신경 쓸 수 있었다. 위생관리에 투자를 해 해썹(HACCPㆍ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까지 받았고 결국 지난해 말 예상보다 빨리 손익분기점을 넘겼다"고 말했다.
순대제조업이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CJ와 풀무원 등은 시장진입을 포기했다. 이미 공장을 운영 중이었던 LG아워홈은 자체급식 망에만 공급하는 것으로 한정해 순대를 생산하고 있다. 연간 5,500억원 규모의 순대시장에서 중소기업의 시장점유율은 95%에 이르고 있는데, 업계에선 "만약 적합업종제도가 없었으면 영세 제조업들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거나 비위생적인 싸구려 순대만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15개 중소 순대제조업체가 해썹인증을 받았거나 진행 중에 있다.
순대업종은 9월로 3년의 보호기간이 경과, 재지정여부 검토에 들어간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아직까지 완전한 자생력을 갖추지 않은 만큼, 한 번 더 적합업종으로 재지정되길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방재홍 한국순대산업협동조합 사무장은 "지난 3년이 토양을 다지는 시기였다면, 앞으로 3년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게끔 자생력을 키워나가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3년 전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82개 품목들 대다수가 순대업과 비슷한 입장이다. 대부분 품목이 적합업종제도의 효과를 보며 안정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지만, 3년이라는 기간은 너무 짧기 때문에 올해 반드시 재지정 돼야 한다는 분위기다.
특히 적합업종 지정 이후 오히려 외국계 기업의 배만 불렸다는 지적으로 홍역을 치른 LED조명 업계는 재지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LED조명업은 '대기업 진출이 막힌 틈을 타 필립스, 오슬람 등 글로벌 업체가 시장을 잠식했다'는 지적을 받으며 적합업종제도의 대표적 '역차별'사례로 지목되어 왔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LED조명 분야야말로 적합업종제도의 대표적 성공사례라고 주장한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가 진입한 건 민간조명시장이며 적합업종제도는 기본적으로 공공조명시장의 얘기"라며 "이 제도 때문에 외국계만 배 불렸다는 건 오해"라고 말했다. 오히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공공 LED조명 시장 진입이 제한되면서, 많은 중소업체들이 골고루 일감을 따내는 효과를 거두게 됐다는 것이다.
LED조명 전문기업 인크룩스의 이승은(39) 이사는 "공공조명시장에서 매출 분산효과로 수익구조가 개선된 중소업체들이 R&D 투자를 늘리는 등 선순환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며 "민간부문에서는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이, 공공분야에서는 중소기업간 경쟁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면 적합업종보호가 완전히 끝난 후에도 중소기업들이 충분히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햄버거 식빵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 역시 군납 학교급식 등 공공분야를 중심으로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규모 약 500억원인 공공분야에 대기업 진출이 제한되면서 고사직전이었던 중소기업들이 한숨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출의 또 다른 한 축인 패스트푸드점 납품(약 500억원)은 여전히 불안한 상황. 이 관계자는 "올해 재지정검토를 앞두고 대형 패스트푸드점들이 햄버거 식빵 생산 업체를 인수하는 등 자체 생산라인을 갖추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재지정이 되지 않으면 패스트푸드점 납품규모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결국엔 이들 대형 업체들에게 공공분야 납품라인까지 빼앗길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제과업은 2013년 2월 적합업종으로 지정됐는데, 가장 논란이 많았던 분야다. 하지만 파리바게트 뚜레쥬르 등 대형프랜차이즈 빵집에 밀려 고사위기에 몰렸던 동네빵집들은 제도 시행 이후 추락세를 멈추게 됐다. 대한제과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동네빵집 수는 4,762개로 전년대비 384개 증가했다. 반면 파리바게뜨는 전년대비 29개 매장이 늘어나는데 그쳤고, 뚜레쥬르는 아예 추가 개점이 없었다.
서울 동대문구에 1년 전 개인빵집을 연 박중기(56)씨는 "2년 전 은퇴한 후 퇴직금을 가지고 자영업을 시작하고 싶었지만 골목상권은 불안하다는 인식이 팽배해 고심하던 중 빵집이 적합업종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듣고 제과점을 열었다"며 "주변에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없다 보니 꾸준한 매출을 기록하며 안정적으로 사업을 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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