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의 '투명사회'모든 분야에서 투명성 강요 분위기구성원들 자발적 공개·감시 내몰려결국 통제·독재사회 모습으로 진화엄기호의 '단속사회'사회적 관계는 과도하게 차단한채SNS 등 익명의 공간에서 지나친 접속정보 아닌 이야기 들어 주는 '곁' 잃어
현대의 성과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던 재독철학자 한병철과 전방위 인문학자 엄기호가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진단하는 저작을 동시에 출간했다. 두 사람은 독특한 형태로 진화하는 권력시스템의 통제(한병철의 )와, 사회성을 상실한 구성원들이 빚는 기형의 사회(엄기호의 )를 진단해냈다.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 교수가 쓴 는 '투명성'이라는 단어가 갖는 원천적인 의미를 전복한 사유와 논리전개로 독일 지식인 사회에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저작이다. 11일 한국어판 출간(김태환 옮김)을 알리기 위해 진행한 기자 간담회에서 한 교수는 '불신'의 사회에서 '투명'에 대한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역설적이게도 자발적 감시와 통제사회가 굳건해지는 현상을 설명했다.
"독일에선 이미 투명이란 개념이 이데올로기화했습니다. 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투명을 요구하는 게 일상이 됐죠. 하지만 불신이 굳건해진 사회에서 누군가 투명하게 모든 것을 밝힌다고 해서 신임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투명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모두가 모든 것을 드러내도록 내모는, 권력시스템의 새로운 통제를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자유가 곧 통제"라는 이른바 자유의 변증법으로 이 같은 역설을 설명한다. "(독일뿐 아니라 모든 현대 국가 시스템의) 권력은 이제 자유를 억압하는 식으로 통제를 하지 않아요. 사회 구성원 스스로, 투명을 강요당하는 분위기 아래 정보와 사생활을 알아서 내놓고 공개하도록 몰아갈 뿐이죠. 이를 '유혹하는 권력'이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모든 걸 공개해요.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폰은 현대의 고문도구이자 고해성사를 위한 의자라고 할 수 있겠죠."
한 교수는 투명을 강요하는 세상이 언뜻 깨끗하고 정치적으로 발전한 모델을 의미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독재사회의 모습을 지닌다고 강조한다. "투명을 요구하는 것은, 즉각 공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사유의 공간이 좁아지고 정치의 호흡이 짧아져요. 미래지향적 사고가 어려워지고 장기적으로 비전을 빚을 수 없는 사회를 만들어내요. 이는 평준화, 획일화를 뜻하고 급기야 다름이 사라진 독재사회를 부르게 됩니다."
그는 투명사회화로 인해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온갖 정보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 좋아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구글글라스는 세상만사를 정보화해 보여주죠. 하지만 계절이 전하는 분위기, 사랑하는 사람이 쓰다듬어주는 느낌을 과연 이 도구가 정보로 변환해 전할 수 있을까요. 결국 정보도 전체의 일부분일 뿐이죠. 사람들은 투명사회를 살아가면서 안 보이는 것들을 통해 느꼈던 욕망과 욕구를 잊게 됩니다. 이른바 포르노그라피 사회를 맞이한다는 의미입니다."
책의 말미에서 한 교수는 "자유의 공간을 자처하는 구글과 소셜미디어는 파놉티콘(감시를 위한 감옥과 같은 기구)적 형태를 취해간다"며 "사람들은 자기를 노출하고 열렬히 디지털 파놉티콘의 건설에 동참한다"고 말한다. '투명사회'가 만들어내는 디지털 파놉티콘에서 살아가는 시민은 간수이며 동시에 죄수라는 얘기다.
인문학자 엄기호는 사회적 관계를 과도하게 차단(斷)하면서 인터넷과 SNS 공간에선 지나치게 접속(續)하는 한국 사회를 '단속(斷續)사회'라 칭한다. 더불어 국가나 타인으로부터 언제라도 공격받을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여 스스로 울타리를 쌓고 '단속(團束)'한다는 중의로 '단속사회'를 얘기한다. 그는 10여 년간 중산층 밀집지역, 노동조합, 시민사회의 사례를 수집하면서 '어째서 우리 사회는 비정상적 속성을 갖게 됐나'에 대한 해답을 찾아 다녔다. 그 결과물을 모은 에서 엄기호는 압축 성장을 이뤄내는 동안 사회 구성원들이 가족이나 이웃의 '곁'에 머물며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서 공동체가 붕괴하는 모습을 목격했으며 이로 인해 고통의 언어를 해독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한다.
10일 만난 그는 "직장과 가족관계를 달팽이 집처럼 등에 지고 사는 현대인들은 이러한 관계들로 지쳐있으면서 동시에 고독하다"고 말한다. "쉼의 공간을 갈구하며 내면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주변의 충고와 조언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죠. 이들은 자신에게 정보가 아닌 '이야기'를 해주고 들어줄 '곁'을 원하는데 급격히 성장해온 한국 사회의 구성원과 국가는 '곁'이 되어주지 않아요. 실제 공간에선 스스로 닫고, 익명의 공간에선 폭로와 자기 연출이라는 방식으로만 문을 여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더는 '사회성'을 지닌 사회가 아닌 '단속사회'라는 이상한 집단이 되는 것이죠."
저자는 아파트라는 폐쇄적 주거공간이 '단속사회'의 특성을 부추긴다고 말한다. "아파트는 집이 아니라 방입니다. 집이라면 이웃이나 외부인이 지켜보는 외부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아파트는 그렇지 않죠. 자기 소유라도 외벽을 뜻대로 치장할 수 없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만 볼 수 있는 내부를 가꾸게 되죠. 진정한 의미의 사회성이 끼어들 여지가 없어요."
최근의 세 모녀 사건, 집단 따돌림 희생 학생들의 억울한 죽음 뒤엔 '단속사회'의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고 엄씨는 지적한다. "아무도 고통받는 이의 '곁'이 되지 않는 '단속사회'에서 위기에 선 이들은 스스로 고통을 증명하고 소리 지르지 않으면 구제받지 못하는 끔찍한 상황에 놓여 있어요. 그저 소비자 권리의식만 가득 찬 이들의 귀에 타인의 언어는 들리지 않죠. 국가는 어떤가요. 얼마나 살기 어려운지, 마치 성폭력 피해자가 폭력의 기억을 털어놓듯 증명해내야 복지를 내어놓는 정도잖아요. 고통에 빠진 이웃에 다가가지 말라는 암묵적인 동의에 몸이 익어버린 사람들. 이 가운데 우리 사회의 연속성과 연대는 끊어지죠."
책은 사회가 주지 않는 '곁'을 얻기 위해 돈으로 취미 공동체와 같은 유사 '곁'을 구입하는 부류, 그리고 돈이 없어 고통을 증명해야 그나마 생을 이어갈 수 있는 계층으로 우리 사회가 새롭게 양극화됐다고 맺는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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