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11일 오후 3시 27분. 일본 미야기(宮城)현 동남동 130㎞ 지점에서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한 지 40분만에 쓰나미가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을 덮쳤다. 10분후 두번째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하자 터빈 건물 지하의 비상 디젤 발전기를 포함한 전원이 완전 침수됐고, 제어반의 표시등도 일제히 사라졌다.
원전의 안전을 좌우하는 전원이 상실되자 1,2호기 중앙제어실에 근무하던 운전원 24명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중앙제어실은 24시간 원자로 및 터빈 등의 운전을 감시하는 원전의 심장부다. 운전원들은 손전등으로 지름 30㎝ 가량의 제어반을 비추고, 급박하게 모아온 자동차 배터리를 제어반에 연결, 원자로 수위계 복구에 나섰지만 사투는 무위로 끝났다. 원자로 1호기에서는 노심 용융(멜트다운)이 발생했고 사상 최악의 원전사고로 발전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현장이던 1, 2호기 중앙제어실이 10일 한국을 비롯한 해외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원전운영회사인 도쿄전력은 중앙제어실을 방문한 언론에 실제로 조명을 끈 상태에서 원전이 전원이 상실하는 '스테이션 블랙아웃(SBO)'상황을 재연했다.
사고 발생 12시간만인 3월12일 오전 2~3시. 중앙제어실의 방사선량이 도쿄의 2만5,000배나 높은 시간당 1,000마이크로시버트(μSv)까지 치솟자 직원들은 전면 마스크와 보호복을 착용, 1호기 격납용기 손상방지를 위해 증기를 방출하는 벤트작업에 나섰다. 2명씩 짝을 지어 공기탱크를 짊어지고 원자로 건물로 돌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3시16분 1호기 원자로에서 수소폭발이 발생했다. 사고 여파로 중앙제어실 천창 패널이 떨어져 나갔고, 사고 5일후 모든 운전원이 제어실에서 철수했다.
사고 발생 3년이 지난 10일 기자단이 방문한 중앙제어실은 분홍색 시트로 가려지고 내부는 깔끔히 정돈됐지만 당시 사투의 흔적을 모두 가릴 수는 없었다. 제어실로 가는 좁은 계단과 통로, 복도에는 사고 당시 사용된 여러 개의 검은 소방호스가 널브러져 있었다. 면진중요동 대책 본부와 주고 받은 핫라인이 책상 위에 놓여 있어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했다.
1호실 제어실 원자로 수위계 옆에는 시간에 따른 냉각수 수위가 연필로 기록돼있었다. '16시50분 1호기 제어실 마이너스 50㎝' '16시55분 마이너스 130㎝'… 원자로 냉각수 수위가 점차 줄어드는 것은 사고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예고였다. 당시 현장에 있던 운전원 중 10명은 규정치 이상의 피폭으로 치료를 받은 이후 모두 퇴직한 상태다.
중앙제어실을 나와 버스로 오염수 저장탱크가 위치한 곳으로 향했다. 제염작업과 탱크보관 공간확보를 위해 수십그루의 나무가 베어진 채 흉물스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원자로 냉각작업에 사용되는 오염수는 현재 30만톤가량 저장돼있다. 지금도 하루 400톤씩 늘어나는 오염수는 원전 사고 처리의 또 다른 골치거리로 자리잡고 있다.
도쿄전력 산하 원자력개혁감시위원회 위원장인 데일 클라인 미국 원자력규제위원장은 "대량의 오염수를 원전 내 탱크에 담아두는 것보다는 오염수를 정화한 뒤 통제된 해양 방류를 하는 편이 낫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이날 오후 도쿄 지요다구 국립극장에서 아키히토 일왕, 아베 총리, 지진 희생자 유족대표 등 1,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이 열렸다. 아베 총리는 "부흥을 가속화하고 이재민이 하루 빨리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현 각지에서도 지진이 발생한 오후 2시46분을 기해 1분간 묵념하고 피해자의 명복을 비는 행사가 열렸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후쿠시마 공동취재단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