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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3월 12일] 거꾸로

입력
2014.03.1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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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의 좌석은 절반은 열차가 움직이는 순방향으로, 절반은 역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개 순방향을 선호하는 편이라 표를 끊을 때 따로 자리를 지정하지 않으면 순방향 좌석부터 차례로 발권이 된다. 이 자동 자리배정 원리를 깨닫고 난 후부터 나는 부러 역방향 쪽을 선택하곤 한다. 만석이 아닌 경우 순방향 쪽에는 승객들이 다닥다닥 차 있는 반면 역방향 쪽은 빈 데가 많아 자리를 넓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나 승합차와 달라 멀미가 나는 것도 아니고 옆자리에 가방과 겉옷을 부려 놓을 수 있으니 여러모로 편하다. 일단은 그랬기 때문인데, 언제부턴가는 다른 이유로도 거꾸로 가는 방향에 마음을 붙이게 되었다. 순방향으로 앉으면 열차는 차창 밖 먼 풍경과 나란히 달리며 풍경을 추월한다. 빠르다. 다 물리치고 한눈팔지 않으며 목적지까지 쌩하니 나아간다. 거꾸로 앉으면 나는 점점이 멀어져가는 산과 논과 아파트 단지들을 마주 보게 된다. 열차의 뒤에, 내 뒤에 남는 세계. 그 풍경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노라면 배웅을 받으며 길게 인사를 건네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착시이며 착각일 따름이다. 이쪽을 향해 앉건 저쪽을 향해 앉건 열차는 달리고 창밖의 세계는 무심히 그대로 있으며 나는 목적지에 닿는다. 그러나 내 마음이 움직이니 착각이라 해도 어찌 부질없다고만 할까. 뒤로 멀어지는 것들을 향한 이 시선의 끝에 내 삶의 소실점이 있으면 좋겠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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