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처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모두 죽었을 겁니다."(르노 스페인 공장 관계자)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북서쪽으로 200여㎞ 떨어진 바야돌리드에 위치한 프랑스 르노자동차의 스페인 공장. 모든 게 우리나라 부산에 위치한 르노삼성공장을 연상케 한다. 연간 생산능력도 30만대로 같고, 작년 실제 생산실적(바야돌리드 12만5,000대, 부산 13만7,000대)도 비슷하다.
하지만 지난 7일 찾은 이곳의 분위기만큼은 부산공장과 크게 달랐다. '정열의 나라'스페인 국민성을 감안하더라도 근로자들의 표정은 너무도 밝았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취재진에게 반갑게 '올라!(holaㆍ안녕)'라고 얘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곳의 주가는 요즘 상종가다. 우리나라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소형SUV '캡처(한국명 QM3)' 때문이다. 르노 산하 전세계 17개 공장 중 캡처를 독점 생산함으로써 어느 르노공장보다 의기양양하다. 기예르모 마누엘 공장장은 "올해 생산량은 작년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23만대에 이를 것"이라며 "덕분에 공장이 있는 바야돌리드시도 함께 활기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계를 조금만 뒤로 돌리면 바야돌리드시는 죽은 도시나 다름 없었다. 2005년 이전까지는 르노의 인기차종이던 '끌리오(Clio)'생산으로 풍족하게 지냈지만, 이듬 해 이 물량이 전량 르노 본사가 있는 프랑스 공장으로 옮겨가고 대체 투입된 신차 '모두스(Modus)'가 실패하면서 바야돌리드 공장도, 바야돌리드시도 황폐함으로 뒤덮였다. 3교대로 돌던 공장은 1교대로 줄었고, 직원 절반 가량이 일자리를 잃었다. 르노가 공장폐쇄까지 검토했다. 공장 관계자는 "2009년까지 실직자들은 물론 시민들까지 거리로 나와 공장을 살리기 위해 시위를 벌였다. 공장이 예전처럼 활기를 띠기 위해선 새 차가 필수였기에 시위 구호도 '새 차를 달라'였다"고 회고했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2009년.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까지 나서 신차 투입을 요구하는 통에 입장이 난처해진 르노는 바야돌리드에 한가지 제안을 했다.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인다면 신차 생산을 맡기겠다."
지방정부와 근로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들은 생산성 제고를 위해 ▦근로시간 확대 ▦임금 동결 등에 서명을 했고, 르노 본사는 마침내 신차 공급 약속을 했다. 오늘의 바야돌리드 공장을 있게 한 이른바 '바야돌리드 대타협'이다. 르노 관계자는 "바야돌리드는 스페인을 통일한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다. 바야돌리드 말이 스페인 표준어일 정도로 자존심이 강한 도시다. 그런 점에서 지방정부와 노조의 양보는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바야돌리드 공장에 배정된 신차가 바로 캡처다. 실제 생산까지는 시간이 걸렸지만 근로자들은 인내했고, 마침내 캡처가 세계적 돌풍을 일으키면서 바야돌리드 공장과 지역은 회생하기 시작했다.
르노본사는 바야돌리드의 케이스를 글로벌 생산기지관리의 중요한 모델로 삼고 있다. 오로지 생산성과 효율성에 따라, 즉 생산성이 높은 곳에 신차를 배정하고, 반대로 생산성이 떨어지면 물량을 다른 고효율 생산기지로 돌린다는 게 기본 전략이다.
부산공장도 예외는 아니다. 르노본사는 부산공장의 효율성과 생산성에 대해 현재 큰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르노삼성 사장을 지낸 제롬 스톨 르노그룹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방한해 부산공장의 비용(인건비 포함)이 높다는 점을 지적한 데 이어, 지난 4일 제네바 모터쇼에서도 "르노삼성은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실제 부산공장은 2011년 24만4,000대를 정점으로 생산량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 부산공장측은 부진이유를 "본사가 신차를 배정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지만, 본사는 반대로 "생산성이 떨어지니까 신차를 배정하지 못하는 것"이란 입장이다.
르노 본사측은 바야돌리드의 경험을 토대로 부산공장에 대해 강한 생산성 증대압박을 펼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생산기지는 결국 생산성으로 평가될 수 밖에 없다"며 "향후 적잖은 갈등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바야돌리드(스페인)ㆍ파리=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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